"맨해튼 빌딩 쌀때 사자" ‥ 신흥국 자본 몰려

덩치 큰 고층 매물 거래 활발
각국정부도 공관용 건물 물색
유엔대표부 근처 오피스 인기
경기 회복 기대감이 확산되면서 뉴욕 부동산 매매 시장이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아직은 본격적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지만 외국 자본 중심으로 저가 매수세가 꾸준히 유입되면서 전망이 밝아지는 분위기다.


◆중동 · 중국자금 유입 증가 기대29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독일 뮌헨에 근거를 둔 GLL부동산파트너스는 최근 경매에 참여해 맨해튼 소호에 있는 1만4000제곱피트(약 1300㎡)짜리 건물을 4190만달러에 매수했다. 이 건물은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은 프랑스인 장 누벨이 설계했다. 멕시코의 거부인 카를로스 슬림도 5번가에 있는 11층짜리 건물을 1억4000만달러에 구입하기로 하고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10월에는 이스라엘 투자업체 IDB그룹이 HSBC홀딩스의 뉴욕 오피스 타워를 3억3000만달러에 매입하기도 했다.

외국인의 뉴욕 부동산 매입은 일본 부동산 재벌인 미쓰비시토지가 1980년대 말 록펠러센터를 약 2200억엔에 매입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미쓰이부동산도 뉴욕의 엑슨 빌딩을 최초 호가 3억1000만달러의 두 배가 넘는 6억2500만달러에 사들였다. 1985년 플라자합의 당시 달러당 240엔 전후였던 엔 · 달러 환율이 1년 만에 120엔대로 떨어지자 일본 기업들이 비싼 엔화를 바탕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에 뛰어든 결과였다.

비슷한 현상은 1990년대에도 나타났다. 독일 출신의 부동산 투자 거물인 아비 로젠은 경기침체 여파로 미국 부동산 시장이 급락하자 파크애비뉴에 위치한 랜드마크 건물 레버하우스 등을 사들였다.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에는 아랍에미리트(UAE)의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이 은빛 첨탑으로 유명한 맨해튼 크라이슬러 건물을 사들이는 등 중동 자금 유입이 활발한 편이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탄력적인 회복세를 보이면서 중동 및 중국의 투자자금 유입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대수익 겨냥 소규모 투자도

임대수입과 재개발을 염두에 둔 소규모 부동산 투자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부동산개발업체인 시티라이스프로퍼티스의 헨리 배 회장은 "최근 들어 맨해튼 부동산 시장에 중국 등 해외 자본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며 "입지 조건이 좋아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곳은 매물이 나오는 대로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건설된 지 100년이 지난 맨해튼 노후 빌딩을 여러 채 매입해 대형 빌등으로 재개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배 회장은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정기적으로 교포 기업인 등을 대상으로 부동산 투자 세미나를 열고 있다. 심지어 외국 정부도 맨해튼 부동산 가격이 떨어졌을 때 공관으로 이용할 건물을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맨해튼의 한 브로커는 스리랑카 주유엔대표부가 600만달러 상당의 오피스를 구입하기 위해 물색 중이라고 전했다. 지난 2월 라오스 정부는 맨해튼 머레이힐에 있는 5층짜리 타운하우스를 420만달러에 구입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지난해 540만달러를 들여 3번가에 있는 1000㎡짜리 오피스를 구입했다. 심지어 중남미 최빈국인 아이티도 지진이 발생하기 전 2번가에 있는 콘도미니엄 구입을 추진했었다. 한국은 지난해 3월 유엔본부 인근 부지를 1600만달러에 샀으며,내년부터 8층짜리 한국 문화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이곳에는 한옥 체험을 위한 사랑방과 한국영화관이 설치되고,한식을 알릴 수 있는 요리 클래스도 열린다.

전문가들은 상업용 모기지가 위축된 상황에서 당분간 외국 자본이 뉴욕 부동산 시장 회복을 주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총 300억달러 규모의 부동산을 보유 혹은 관리하고 있는 프린시플파이낸셜그룹의 래리 짐플먼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블룸버그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 부동산 가격이 바닥을 치고 완만하게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외국 자본 등 새로운 투자자들이 부동산 시장 회복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