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욕쟁이 할머니와 영이불언(靈而不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백이면 백 모두 '빛'이라고 대답한다. 빛이 태양에서부터 1억5천만 킬로미터를 달려 지구에 도착하는 시간은 8분13초. 가시적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것은 단연 빛이다. 그러나 빛도 염(念)만큼 빠르지 않다. 즉 생각만큼 빠르진 않다는 말이다. 빛은 8분13초 전의 태양을 보게 해주지만, 염은 생각하는 순간이 태양이다.

일본은 이를 초고속 열차인 신칸센에 응용했다. 신칸센 중 두 번째로 빠른 기차의 이름은 ‘히카리(光)’로 ‘빛’이란 뜻이지만, 가장 빠른 기차는 ‘노조미(念)’로 ‘염’이란 뜻입니다. 가장 빠르고 가장 강한 힘인 염력. 만약 염력이 말 속에 담겨있다면 어떻게 될까. 내뱉은 말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나쁜 마음이 담겨있다면 큰 과보를 받게 된다. 전라도 어느 지방에 욕쟁이 할머니로 이름난 한정식집이 있었다. 그분의 음식도 맛깔스러웠지만 귀에 착 감기는 욕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단골들은 무엇보다도 더 이상 그 욕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다들 쓸쓸해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허허 웃으며 식사를 즐겼던 것은 욕쟁이 할머니가 하는 욕을 욕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 자체가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사람이었고 욕에 나쁜 마음을 싣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물이라도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되듯, 맑은 영혼을 가진 할머니의 욕은 기분 나쁜 비속어라기보다는 하나의 깨달음의 언어로 들렸던 것이다.

얼마 전 연예인의 자살로 또 한 번 악성댓글에 대한 슬픈 기억을 상기시켰다. 강력한 조치로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사회 문제로 거론되는 인터넷 게시판의 악성댓글은 그러한 의미에서 매우 조심하고 신중해야한다.

필자에게 악성댓글의 피해로 괴로워하며 찾아온 연예인 K양이 있었다. 오랜만에 대하는 그녀는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져 있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악성댓글로 인해 일에 집중할 수도 없다고 했다.

“저도 철없던 한때의 과오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목을 조른 것은 인터넷에 떠돌며 거품처럼 부풀어진 소문과 근거 없이 내뱉는 악성댓글이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앓을 수 있는 홍역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이란 이유만으로 그렇게 입에 담기 힘든 참혹한 비난을 받을 수가 있느냐며 대화하는 내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만 닦았다.

시간이 지나면 진정이 될 것이라고 말은 해주면서도 악의적인 말 한마디가 칼 보다 더 무섭다는 사실을 알리가 없는 철없는 누리꾼들이 안쓰럽다. 악플을 다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지 모르지만 그 상대방은 오랜 기간 동안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개인적 감정이나 질투심으로 하는 악플은 단지 말 몇 마디가 문제가 아니고 그 말에 나쁜 마음을 실어 보내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즉, 말에 염력이 실려 전달되기에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하는 것이다.악성댓글이라고 해서 모두 거친 표현만 있는 것도 아니다. 겉으로는 좋은 말로 칭찬하면서도 말을 비비 꼬면 그 상반되는 본심이 상대방에게는 더욱 고약하게 느껴진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깨끗하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은 대부분 더럽다. 나쁜 마음을 품은 말처럼 해롭고 치명적인 독(毒)도 없는 것이다. 내뱉는 말은 머리 위 하늘을 향해 쏜 화살과 같다. 하늘을 향해 쏜 화살이 어디로 향하겠는가. 그것이 모두 카르마가 되어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이다.

말은 형태는 없지만 마음을 담으면 염력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말 속에 마음을 담으면 때로는 현실이 되기도 한다.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미소 한 번, 덕담 한 마디도 좋은 보시(布施)’라는 말처럼 인간관계에서 좋은 마음을 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어울려 사는 세상, 때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주는 영이불언(靈而不言)이 세상을 사는 처세술이 아닌가 한다. (hooam.com / 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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