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물가 뒤의 '인플레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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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료품 5개월간 29.7% 급등통계청이 3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6%(전년 동월 대비)로 3개월 연속 2%대를 유지했다. 기획재정부는 "전반적인 물가 안정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격 변동성이 큰 농산물과 석유류 등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1.5% 상승에 그쳤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5월에도 2%대의 안정적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4월 물가지수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곳곳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징후들이 보인다. 첫째, 장바구니 물가로 불리는 식료품 가격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상기후 영향으로 배추(67.3%) 파(83.4%) 무(32.9%) 등 채소류 값이 급등했다. 51개 품목을 기준으로 산출하는 신선식품지수는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간 29.7%나 올랐다.
주부들의 아우성이 터질 만하다. 이상기후로 인한 농수산물 공급 부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가공식품과 내구재,섬유제품 등 공업제품 가격이 국제 원자재값 상승 여파로 오름폭이 커지고 있다. 3월 3.0%에서 4월에는 3.4%로 뛰었다. 휘발유(10.9%)와 경유(12.7%) 등 석유류 가격 오름폭이 심상치 않다. 최근 가파르게 상승한 국제 원자재값은 시차를 두고 국내 최종 소비제품에 추가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셋째,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10월 113.2에서 지난달 115.6으로 최근 6개월간 2.2% 올랐다. 4월에는 전달에 비해 0.5% 올랐다. 작년 4월 물가 상승률(3.6%)이 높았던 데 따른 '기저효과'로 인해 소비자물가가 안정된 것으로 보일 뿐 실제로는 강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넷째, 6월 지방선거가 끝난 뒤 전기 가스 등 공공 요금이 줄줄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 원가 상승 압박을 받고 있는 공기업들이 선거 이후로 가격 인상 시점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임금 인상 요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임금을 동결하거나 반납한 노동계는 올해 임금을 큰 폭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섯째, 신제품 개발 주기가 짧아짐에 따라 가격 하락 속도가 빨라지는 정보기술(IT) 제품값으로 인해 물가 안정 착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데스크톱 컴퓨터 가격은 최근 1년 새 가격이 25.7%나 떨어졌다. 디지털로 바뀐 TV 가격도 같은 기간 18.5% 하락했다. 컴퓨터와 TV 가격지수는 2005년 1월 100을 기준으로 지난달 각각 44.7,44.0을 기록했다.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떨어진 셈이다. 기술혁신에 따른 가격 하락의 뒤편에 물가 상승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금융위기 이후 풀린 유동성에 따른 인플레 압력도 주시해야 한다고 민간 연구소들은 지적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아직은 정부의 재정 및 통화 팽창으로 풀린 돈이 본격적으로 돌지 않아 단기 부동화하고 있지만 민간 부문 경기가 회복되면 총 수요가 증가하면서 언제든지 인플레 압력으로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