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어린이날' 공휴일 폐지 안될 말

미래주역 권리보호 짚어볼 필요
대화 나누며 세대간 소통 이루길
요즘 나이 드신 분들이 하는 우스갯소리에 손자 자랑하려면 만원씩 내고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핵가족 시대를 살아가면서 친구의 손자를 만날 일이 거의 없고,그러다 보니 얼굴은커녕 이름도 모르는 남의 손자 이야기를 들어주려면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돈 안내고 손자 자랑 계속하면 오히려 만원 줘서 집으로 보내 버린다는 이야기가 제법 실감나게 들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손자 사랑하는 마음이야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겠지만 옛날에는 손자가 워낙 많다 보니 큰 손자,큰 손녀만 편애하고 나머지 손자들에게는 조금 소홀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하나둘이 보통이니 어느 손자 하나가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중심이 돼 1923년 5월1일을 어린이날로 공포하고 기념식을 치른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하니 어느새 아흔 돌에 가까워지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미래 사회의 주역들로 맑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어린이날은 일제 말기에 중단되기도 했으나 해방 후에 다시 복원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어린이날이 법정 공휴일에 포함되면서 5월5일이 나라의 중요한 기념일로 자리 잡게 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어린이날을 구태여 공휴일로까지 지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휴일이 아닌 어버이날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고 국가 경제의 측면에서 아이들이 없는 사람들까지 놀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심지어는 1년 365일이 다 어린이날이나 마찬가지인 세상이 됐으므로 어린이날은 이제 사명을 다했다는 논리까지 등장한다.

하기야 우리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아이들의 사정이 많이 나아진 건 사실이다. 우리 때는 국민 대다수가 기본적인 생활여건조차 변변히 갖추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었고 어린이들의 인격과 권리보호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했다. 가끔은 궁상에서 벗어나는 날이 있기는 했다. 설날이나 추석은 새 옷을 입고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았고 세뱃돈이나 용돈은 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날들이 아이들의 천국은 아니었다. 명절에는 차례가 무엇보다 중요한 행사였다. 그러니 생일을 제외하면 오로지 어린이날만이 마음껏 뛰어놀고 당당하게 대접받는 유일한 날이었다. 그랬던 어린이날을 이제 공휴일에서 제외해도 될 만큼 아이들의 상황이 나아지긴 한 것일까.

경제발전으로 아이들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의 수준이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고,저출산의 영향으로 아이들이 가족 내에서 더욱 존중 받는 위치에 서게 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요즈음 아이들이 '어린이의 천국'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자신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제한적인 생존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이 안쓰럽기만 하고 아동 상대의 반인륜적 성범죄가 횡행하는데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무기력한 정부와 사회를 보며 좌절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장차 짊어져야 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다. 앞으로 16년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20%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으며,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의 재정이 고갈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상황이 이럴진대 어린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모처럼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부족했던 대화를 나누는 하루로,자녀가 없는 사람들은 미래 언젠가에 태어날 자녀나 손자를 생각하며 그들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하루로 어린이날의 의미를 새겨보는 건 어떨까.

허구생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