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전 현대차 부회장 "매출 3배로 늘어날 때까지 월급 사양합니다"

반도체 사업으로 '인생2막'…"씨앤에스를 퀄컴같은 글로벌 비메모리 회사로 키울 것"

"매출이 지금의 3배가 될 때까지 월급을 받지 않겠습니다. "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부회장에서 반도체 팹리스 기업(생산시설 없이 설계만 전담) 씨앤에스테크놀로지의 대표이사로 변신한 김동진 회장(60)은 지난 3월 취임 직후 주주들에게 이같이 다짐했다. 여기에는 김 회장이 씨앤에스테크놀로지를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잠룡(潛龍)'이라고 믿고 투자한 주주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회사의 최대주주가 된 '김동진'이란 이름의 무게를 여러 주주에게 각인시키고 싶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김 회장은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처럼 파격적인 약속을 한 뒷얘기를 꺼내놓았다. 그는 "자기 자본이 320억원이나 되는 회사가 지난해 벌어들인 매출은 고작 220억원이었고 영업이익을 못낸 지도 4년이나 됐다"며 "자기 자본의 2배는 벌어야 제대로 된 회사라 할 수 있다고 판단해 배수의 진을 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까지 매출 목표를 달성하기로 했다"며 "월급을 빨리 받으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정몽구 현대 · 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의 오른팔로 불리던 그룹 내 실세였다. 엔지니어 출신 전문경영인으로 1978년 현대그룹에 입사해 2001년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2003년 9월부터는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았다.

수십조 단위의 사업을 주무르던 김 회장이 중소기업,그것도 지금까지 몸담아 온 분야와 관련이 적은 반도체 분야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김 회장은 "은퇴 후 개인적으로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면서 현대차그룹에도 도움이 되는 일을 고민해오다가 '차량용 반도체'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현대차 시절 눈여겨 봐 왔던 씨앤에스테크놀로지에 뿌리를 내렸다"고 답했다. 차량용 반도체는 차 안팎의 다양한 정보를 분석,주요 부품을 구동하는 역할을 한다. 차 한 대에 50종가량의 부품이 들어가지만 거의 국산화돼 있지 않다. 지난해 현대차가 구매한 차량용 반도체는 1조6000억원어치.자동차가 전장화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할 때 2015년에는 3조원어치 이상이 필요하다.

김 회장은 현대차 재직 시절이던 3년 전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씨앤에스테크놀로지를 알게 됐다. "대기업들은 물량이 충분하지 않다며 개발을 꺼려했고,중소기업들은 아예 기술이 없었어요. 가능성이 있는 벤처기업이라도 찾아보자고 판단해 발굴한 곳이 씨앤에스테크놀로지였습니다. 무엇보다도 DMB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수신칩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점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

당시 현대차는 씨앤에스테크놀로지에 안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자동차 오디오용 제품 등 6종을 개발해 줄 것을 의뢰했다. 지식경제부가 자동차용 반도체 개발 사업을 국책과제로 선정한 후에는 스마트키,배터리 센서,주차지원 시스템을 제어하는 반도체 등으로 개발 품목이 늘어났다. 김 회장은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 작업이 마무리되면 완성차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품질문제가 발생할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다"며 "현대차 입장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의 타임 스케줄은 2015년에 맞춰져 있다. 목표는 인텔,퀄컴,TI(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10대 비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되는 것이다. 그는 "R&D(연구 · 개발) 인력을 추가로 선발하고 개발하는 차량용 반도체 숫자도 더 늘릴 계획"이라며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송형석/조재길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