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까지…미분양 9만채 쌓인 지방 '이중고'

올해 보금자리주택 지방 1만7824채 분양
"분양가 할인폭을 더 높여야 하나요. 지금도 할인할 수 있는 최대 상한선인데…."

지방에 대규모 미분양 아파트를 떠안고 있는 한 건설사 직원은 올해 지방에서도 1만8000채 가까운 보금자리주택이 공급된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이렇게 푸념했다. 본사에서 근무하다 미분양 판촉을 위해 지방에 내려가 있는 이 직원은 "설마설마했는데 올해 지방에서 이 정도의 보금자리주택이 공급된다면 미분양 물량 판매전략을 전부 새로 짜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지방에도 보금자리 1만7824채

국토해양부가 6일 발표한 올해 보금자리주택 공급 계획안을 보면 수도권 14만4000여채,지방 4만3000여채 등 올해 전국에서 18만7819채가 공급된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14만4067채로 전체 물량의 78%가량을 차지하고 지방은 22%인 4만3752채다. 국민임대를 비롯해 영구임대 공공임대 등 임대가 57%인 11만435채,분양은 43%인 7만7384채다.

문제는 올해 지방에서 공급이 예정된 4만3752채의 보금자리주택 중에 포함된 1만7824채의 분양 물량이다. 이는 전체 지방 미분양 물량의 20%에 달하는 규모다. 국토부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11만6438채로 이 중 76%가 넘는 8만9112채가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 있다. 주택 수요가 많은 서울의 미분양 주택은 1813채에 불과하다. 건설업계는 "정부가 지난달 23일 종합대책을 내놓을 정도로 지방 미분양이 심각한 상황에서 민간 아파트보다 값싼 보금자리주택을 지방에서도 공급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보금자리주택에 지방 공급 물량을 넣어 발표한 게 이번이 처음이며 지역별로 구체적인 공급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권역별 숫자는 지자체 간 경쟁이 생길 수 있어 밝히기 힘들다"며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가 인하 효과는 '글쎄'

보금자리주택이 지방에서 공급된다고 해서 지방 수요자들이 혜택을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의 민간 아파트 분양가가 크게 떨어지기도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분양 주택의 경우 이미 30%까지 할인해 분양하는 단지가 수두룩하다. 지방은 아파트를 지을 택지가 많아 그린벨트를 풀지 않아도 돼 분양가 인하 효과가 크지 않다. 국토부 관계자는 "서울과 수도권처럼 인근 시세의 몇 %로 분양가가 책정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지방의 보금자리주택은 그린벨트보다 최대한 기존 택지지구를 활용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업승인이 아직 나지 않은 기존의 미분양 임대지구 등을 분양 물량으로 전환하는 방법 등도 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지방 보금자리주택이 분양가 인하 효과는 얻지 못하면서 지방 미분양만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동산연구소장은 "주택 공급이 가뜩이나 과잉인 지방에 가격 차이도 나지 않을 보금자리주택을 더 공급하면 부도 위험이 큰 건설사들이 도산의 위기로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 소장은 "지방에서도 중소형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있다지만 중대형과 중소형의 가격 차이가 적어 보금자리주택의 취지도 퇴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