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도 오지않는 외국인 근로자… 中企 사장들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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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자 줄고 불법체류자 본국 송환 늘어6일 오후 2시 경기도 의정부고용지원센터.중소기업 사장들이 책상에 앉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10여분이 지나도 이들이 기다리던 사람은 오지 않았다. "매주 목요일마다 이런 풍경이 연출됩니다. "이철희 고용지원센터장은 외국인 근로자를 면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지역중소기업 사장들이라고 설명했다. 대개 구직자가 구인자를 기다리는 게 상례지만 이곳에선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오늘도 일손 못구하면 공장 스톱" 발동동
중소기업에 외국인 근로자 인력난이 불어닥치고 있다. 인력을 제때 못 구해 공장을 못 돌리는 중소기업들이 전국적으로 허다하다. 정부가 내국인에게 일자리를 공급한다며 외국인 도입 쿼터를 대폭 줄인 탓이다. ◆직원 못 구해 임원이 기계 돌려
이곳에서 만난 박진후 사장(46)은 "외국인 근로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여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 오늘 못 데려 가면 공장을 못 돌린다"며 애타했다. 경기도 양주에서 금형공장을 한다는 박 사장은 "외국인 근로자 4명이 필요한데 3개월째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있는 신우섬유는 인력이 모자라 회사 임원까지 나서 목욕용 타월을 만들고 있다. 박덕용 상무는 "타월을 짜는 기계인 '텐터'를 돌리려면 팀당 7명이 필요한데 4명밖에 없어 사무실 직원까지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우섬유는 지난해 말 외국인 근로자 10명 중 6명이 기한만료(4년10개월)로 본국으로 돌아간 후 새 외국인 인력을 뽑지 못했다경기 경북 전남 등 전국 각지에 있는 3D업종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경기 회복기에 주문이 밀려드는데도 일손이 모자라 공장을 못 돌리는 중소기업들이 수두룩하다.
의정부고용지원센터는 수급 불균형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주기 위해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중기사장과 외국인 근로자 간 '구인 · 구직만남의 날' 행사를 연다. 하지만 절반 이상의 사장들이 헛걸음하고 돌아간다. 이 센터장은 "오늘도 사장 60명 중 20여명만 사람을 뽑아갔다"며 "외국인 근로자가 워낙 귀하다 보니 사장들이 되레 면접을 위해 기다리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센터에 따르면 사장들이 근로자 면접을 위해 매주 수요일 선착순 60명씩 접수하는 인터넷 신청 때마다 경쟁이 심해 3분 만에 접수가 마감된다. 반면 외국인 근로자들은 참석자 수에 제한이 없는데도 사업주 참석인원보다 적은 40~50명에 불과하다. 외국인 인력 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공급은 줄어드는 추세다. 노동부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 신규도입 규모는 2007년 4만9600명,2008년 7만명이었으나 지난해 1만7000명으로 급감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올해는 2만4000명으로 소폭 늘었지만 불법체류 적발로 매년 본국에 송환되는 외국인 근로자 1만명과 기한만료로 돌아가는 1만4000명을 감안하면 순증가 인원은 제로(0)"라며 인력 부족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내국인과 비슷한 연봉 주지만
신우섬유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PVC전문업체인 케이에스폴리텍의 김대종 사업부장도 석 달 넘게 매주 목요일 '만남의 날'에 참여하고 있지만 베트남 출신 근로자 3명을 채용하는 데 그쳤다. 정원보다 6~7명이 모자란 상황이다. 때문에 PVC 필름을 제작하는 기계인 '캘린더' 3대 중 1대는 쉬고 있고,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토요일 특근을 하고 있다. 김 부장은 "외국인 근로자 연봉이 100만원 인상된 1800만원"이라며 "기숙사,인터넷 지원,식사 제공 등의 비용까지 계산하면 내국인(2000만원)과 비슷하지만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외국인력 수급은 국내 고용사정과 연계해 정해야 한다"며 "외국인력을 많이 들여올수록 국내 취약계층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고 지적했다. 산업환경이 열악한 제조업에선 내국인이 외국인력의 대체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업주들은 점차 불법체류 근로자들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18만명의 불법체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나마 이들도 이직이 잦고 말썽의 소지가 많아 채용하기 쉽지 않은 형편이다. 결국 3D 업종을 기피하는 내국인에게 일자리 제공도 못 하고 중소제조업체엔 극심한 인력난을 초래한 결과만 낳은 셈이다.
의정부 · 양주=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