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보수당 13년만에 총선 승리] 경제위기 부른 노동당 '심판'…캐머런 '영국병' 대수술 집도하나

글로벌 워치
영국 보수당이 13년 만에 제1당이 됐다. 단독 과반 의석을 이루지 못한 '절반의 성공'이긴 하지만 노동당의 4기 연속 단독 집권을 좌절시켰다는 점에서 일단 승리는 승리다. 특히 이번 보수당의 승리는 노동당 정부의 경제실정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징벌' 성격이 강한 만큼 영국 경제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그리스에서 촉발돼 포르투갈,스페인을 거쳐 영국 근처에까지 다가선 재정위기의 폭풍에 보수당이 대대적인 '수술'을 시행할지 주목된다.

◆경제실정이 노동당을 밀어냈다근래에 보기 힘든 치열한 접전 끝에 보수당은 어렵게 일단 제1당이 됐다. 보수당은 2005년 총선에 비해 무려 97석 늘었지만 노동당은 91석이나 감소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한때 3강 체제를 이루며 돌풍을 불러일으켰던 자유민주당은 오히려 의석 수가 5석 줄면서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렀다.

노동당이 큰 폭으로 몰락한 것이나 자민당 돌풍이 희석된 것은 모두 "현 정권의 경제실정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선거 막판 보수당 쪽으로 표가 몰렸기 때문이다. 3당제가 됐을 때 정국 불안을 우려한 부동층의 막판 보수당 쏠림 등이 맞물린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악화된 영국 경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보수당의 재집권을 가능케 했다는 게 중론이다. 올해 영국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2%로 유로존 평균치 6.7%의 두 배가량 될 전망이다. 이는 재정위기가 심각하다는'PIGS(그리스 아일랜드 ·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국가들을 모두 제치고 재정적자 문제가유럽연합(EU)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9.8%),스페인(8.5%),포르투갈(7.6%),아일랜드(11.7%) 등도 모두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영국보다 양호한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해 4.9%나 위축됐던 경제성장률도 올해 1.2%에 불과해 독일,프랑스 등 경쟁국과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반면 올해 물가상승률은 2.4%로 영국중앙은행(BOE)의 목표치 2%를 훌쩍 넘을 전망이다. 경제통을 자임하던 고든 브라운 총리의 집권 결과가 영국을 또다시 '유럽의 환자'로 전락시킬 위기에 몰아넣은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런던과 영국 중북부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보수당은 약진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는 "이번 선거 결과는 노동당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명백한 거부"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캐머런 당수의 역할도 보수당 승리에 한몫 했다.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를 나온 정통 엘리트 귀족 출신인 캐머런은 2001년 39세의 나이에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4년 만에 역대 최연소 보수당 당수로 선출되면서 일약 중앙정계의 주목을 받았다. '온정적 보수주의'를 표방하며 사회약자를 포용했고 세련된 이미지와 화려한 언변으로 '늙고 구식이다'는 보수당의 고정 이미지를 깼다. 에너지가 넘친다는 의미에서 '듀라셀(오래가는 점을 강조한 건전지 상표) 토끼'라는 별명처럼 선거판을 누비면서 보수당 표 결집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한편 영국에서 보수당의 승리는 글로벌 경제위기 후 유럽 전역에서 우파 정당들이 약진하고 있는 흐름과도 궤를 같이한다. 우파 정당들은 경제성장과 감세,일자리 창출,공공부문 구조조정,복지지출 삭감 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약진하고 있다. 2008년부터 이탈리아,독일,헝가리 총선과 유럽의회 선거에서 모두 보수 정당이 승리를 거뒀다. ◆'영국병'에 대수술 해낼까

보수당이 단독 과반에 실패한 만큼 자민당과 손잡을지 보수 성향의 기타 군소정당 지지로 연정을 구성할지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자민당과 연정을 이룰 경우 안정적인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지만 대조적 색깔의 양당 간 정책차가 크고 소수당과 손잡을 경우엔 올 하반기 보수당이 의회를 해산,총선을 다시 실시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당과 연정을 맺느냐에 따라 보수당 경제정책 강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영국 경제에 근본적인 경제개혁의 메스를 들이댈 것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보수당이 정부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한 자유시장 논리를 바탕으로 노동당의 정책을 매섭게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발등의 불인 재정적자 감축 움직임에 집권 초부터 강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3월 말로 끝난 2009~2010회계연도 재정적자는 1634억파운드(335조원)로 사상 최대 상태인데 보수당은 선거기간 내내 정부의 재정지출 축소 정책을 당장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5년 이내에 재정적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노동당 정부의 입장처럼 내년부터 지출 삭감에 들어갈 경우 때를 놓칠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에 따라 보수당은 국민건강과 대외원조를 제외한 전 부문에서 지출을 삭감해 올해 안에 60억파운드의 지출을 줄인다는 공약을 내걸었고,이 부분을 우선 시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