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 '휘청'] 불안감 확산→투매→신용경색 조짐…2008년 '금융위기'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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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지수 하룻새 31% 급등…리보금리 13일 연속 올라그리스 재정 위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파국으로 이어질까. 섣불리 '그렇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금융시장 곳곳에 경보음이 울리는 것은 사실이다. '불안감 확산→투매→시장 및 신용경색 조짐'이라는 초기단계도 비슷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확산과정이 아직 생생한 세계 금융시장은 그리스 위기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을 휩쓸고 영국을 거쳐 미국까지 덮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안전자산 金ㆍ달러 강세…원자재값 3개월만에 최저
◆2008년의 데자뷔?최근 금융시장 상황은 2008년 금융위기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많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 옵션거래소의 VIX지수가 단적인 예다. 지난 6일(미국 현지시간) VIX지수는 전일 대비 31.67%나 급등했다. 이 같은 상승률은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직후인 2008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VIX지수는 S&P500지수 옵션의 변동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증시가 불안해지면 상승하는 모습을 보인다.
신용시장의 경색도를 보여주는 리보(런던은행간 금리)도 큰 폭으로 뛰었다. 6일 3개월물 리보는 13거래일 연속 오르며 0.3777%를 기록,지난해 8월 이후 9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국제 단기자금 시장 여건을 가늠케 하는 TED스프레드 역시 오름세다. 5일 TED스프레드는 전일 대비 8.72%,지난달 말 대비 63.13% 올랐다. TED스프레드는 리보에서 미국 국채 3개월물 수익률을 뺀 것으로 높을수록 단기자금 조달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 다우지수가 6일 장중 한때 1000포인트 가까이 급락한 것도 이런 상황을 떼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주문실수'라는 해프닝만으로 치부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통화가치와 금값의 움직임도 2008년과 유사하다. 유로화 가치는 6일 현재 유로당 1.26달러대로 떨어지며 심리적 지지선인 1.30달러가 붕괴됐다. 반면 상대적으로 안전한 달러화 가치는 강세다. 주요 6개 통화(유로 엔 파운드 캐나다달러 스웨덴크로네 스위스프랑)에 대한 달러화의 평균 가치를 의미하는 달러 인덱스는 전일 대비 1.01% 오른 84.86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물 금 선물 가격은 전날보다 22.6달러(1.9%) 오른 온스당 1197달러30센트로 마감했고 시간외거래에선 1200달러를 넘었다. 호주 헤지펀드 업체인 H3글로벌어드바이저스는 "내년 금값은 온스당 15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19개 원자재 가격을 반영하는 로이터-제프리CRB지수는 달러 강세 여파로 최근 3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위기 전염'경고도 잇따라미국의 저명한 금융사학자 찰스 킨들버그는 금융위기가 '열광→공포→붕괴'의 순서로 전개된다고 밝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2008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측면이 있다. 2007년 하반기만 해도 전 세계 증시는 초호황이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고,미국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서브프라임 관련 대규모 손실을 입기도 했지만 시장 참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고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최근 그리스 재정위기는 세계 각국이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은 결과다. 재정 투입 초기에는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안도감이 확산됐다. 글로벌 증시도 안정세를 되찾았다. 하지만 과도한 재정적자로 국가 채무 불이행 우려가 높아지고 그리스가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안도감은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그리스발 위기가 전 세계로 전염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해 주목받은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그리스 사태는 전세계적인 재정위기 속에 빙산의 일각일뿐"이라며 "오늘은 그리스,내일은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아이슬란드가 위기를 겪고 조만간 일본과 미국도 사태의 중심에 서서 글로벌 경제를 흔들 것"으로 전망했다. BNP파리바는 "그리스는 베어스턴스,포르투갈은 리먼브러더스,스페인은 AIG"라고 지적했다. 베어스턴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조였고 리먼브러더스는 신호탄,AIG는 절정이었다.
하지만 섣불리 위기 전염을 단정짓기 힘든 측면도 있다. 세계 각국이 그리스발 위기 차단에 적극적으로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7일 아시아 주요 증시와 외환시장이 다소 진정세를 보이기도 했다. 김성순 기업은행 외환담당 차장은 "선진국들이 내놓는 해법 수준에 따라 다음주 금융시장의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