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교토식 경영' 배우기 열풍] (1) 교세라 '세이와주쿠'‥창사이래 50년 연속 흑자

"직원을 믿어라 진심으로!"
지난 3월10일 저녁 도쿄 인근 지바의 도쿄베이호텔.1층 연회장을 30~40대 중소기업 경영자 1000여명이 가득 채웠다.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77)의 경영스쿨인 '세이와주쿠' 연찬회다.

30대 초반의 경영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구업체를 경영하는데,기술을 잘 몰라서 기술자들에게 끌려다닌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 눈을 지그시 감고 듣던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답한다. "기술자는 회사의 보물이다. 현장 기술자들에게 '더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진심으로 호소해라.사원들의 마음을 사는 게 경영의 시작이다. "세이와주쿠는 1983년 이나모리 명예회장을 배우려는 교토의 젊은 중소기업 사장 십수명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연구회(뱅쿄카이).지금은 회원 5726명의 전국 조직으로 발전했다. 미국 중국 브라질 등 해외 지부도 8곳이나 있다. 일본에서 '살아 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이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셈이다.

◆창업 후 적자 낸 적 없어

세라믹 전자부품 분야에서 세계 선두인 교세라.1959년 종업원 28명으로 남의 공장 한구석을 빌려 출발한 이 회사는 현재 전 세계 221개 계열사에 6만명의 종업원이 일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연간 매출은 1조엔(약 12조원)이 넘는다.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진 1990년 이후 20년 동안에도 매출은 3배로 급증했다. 창업 후 지금까지 적자를 낸 적은 한번도 없다. 이런 눈부신 성과의 비결은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쥐고 있다. 세라믹 기술자로 27세에 회사를 창업한 그는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철인(哲人)경영자로 유명하다. '인간으로서 바른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행동하고 경영하라''공명정대하고,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라''경영자는 인격자여야 한다'. 그가 직접 정리한 120쪽 수첩 분량의 '교세라 철학'은 경영자는 물론 사원들의 행동 규범이다. 1997년 경영일선에서 은퇴한 그가 아직도 교세라의 정신적 지주이자 구심점인 이유다.

"매일 아침 부서 조회 때 직원들은 수첩에 담긴 교세라 철학을 한구절씩 읽고 하루를 시작한다. "(모리오카 지카코 교세라 홍보실 책임자) 매년 4월11일 회사 창립기념일엔 전 사원이 강당에 모여 우수 사원들의 교세라 철학 실천 사례를 듣기도 한다.

◆능력보다 인간성 중시교세라는 사원들의 능력보다 품성을 중시한다. 그것도 이나모리 명예회장의 철학이다. "처음엔 능력 있는 사원이 회사 장래를 짊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능력 있는 사람은 다른 회사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금방 떠나더라.반면에 능력이 부족해도 끝까지 회사에서 성실히 일한 사람은 나중에 능력도 개선돼 훌륭한 인재가 됐다. "(이나모리 명예회장)

그는 또 사장에서 말단 사원까지 한마음이 될 것을 강조한다. 그러려면 경영자는 종업원을,종업원은 경영자를 서로 배려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이런 철학을 갖게 된 데는 계기가 있다. 창업 후 얼마 되지 않아 젊은 사원 11명이 사표를 들고 와 임금 인상을 요구한 적이 있다.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아 사흘밤을 설득해 겨우 진정시키긴 했다. 그러나 이 일을 겪으며 그는 '회사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란 근본적 고민을 하게 됐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회사는 종업원과 그 가족의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곳이더라.그걸 깨닫는 순간 정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 그는 이후 '전 종업원의 행복을 물심양면으로 추구하고 인류와 사회의 진보 발전에 공헌한다'는 경영이념을 만들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때 직원을 한명도 내보내지 않은 것은 그 이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교세라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한때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갔었다. 경영자는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올초 부실 경영으로 도산한 일본항공(JAL)의 회장에 취임했다. 그의 리더십과 경륜으로 JAL을 회생시켜 달라는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JAL의 구조개혁과 경영혁신에 여념이 없는 그가 교토식 경영의 진가를 다시 한번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교토=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