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교토식 경영' 배우기 열풍] '잃어버린 10년'에도 10배 성장…'한우물' 오너경영 빛 봤다
입력
수정
교토기업 3대 성공 요인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은 지난달 26일 2009 회계연도(2009년 4월~2010년 3월) 결산 실적을 내놓으면서 '비전 2015'를 발표했다. 2015년도 매출을 2조엔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6년 후 매출액을 현재(2009년도 5874억엔)의 4배 가까이 늘리겠다는 목표다. 일본전산은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동안에도 10배가 넘는 성장을 기록했던 회사다.
교토 기업의 공통점 중 하나는 고속 성장을 한다는 점이다. 불황기에도 성장 속도가 줄지 않는다. 스에마스 지히로 교토대 교수가 1991~2001년 10년간 교토 기업 10개사와 소니 파나소닉 히타치제작소 등 도쿄에 본사를 둔 대기업 7개사 실적을 비교한 자료를 보자.이 기간 도쿄 기업의 매출은 30% 증가한 반면 교토 기업은 2배로 늘었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같은 기간 교토 기업이 8~18%를 달성했다. 2~4%에 그친 도쿄 기업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높다. 불황에 강한 특징은 최근에도 증명됐다. 2008년 가을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후 회복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전산은 2009년도 사상 최고인 783억엔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무라타제작소의 당기순이익은 247억엔으로 전년 대비 6.9배였다. 130억엔의 영업이익을 달성한 옴론은 증가율이 145%였다. 이런 교토 기업의 경쟁력 비결은 무엇일까.
◆카리스마 오너 경영
교토 시내 중심가 시조에는 '교토경제구락부'란 회원제 살롱이 있다.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 등 교토의 오너 경영자들이 만든 사교장이다. 교토의 오너 경영자 20여명은 최근까지 30년 동안 '쇼와카이'란 친목회를 유지해왔다. 매달 한 번씩 모여 정보도 교환하고,결속도 다지는 모임이다. 이런 사적인 모임이 활발한 건 교토에 유독 오너 경영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옴론 호리바제작소 무라타제작소 일본전산 등은 창업자나 2세가 직접 경영하고 있다. 교세라 닌텐도 니치콘은 창업자 오너가 은퇴했지만 여전히 회사 경영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교토 기업은 오너 경영을 하기 때문에 리스크(위험)를 감수한 과감한 투자 결정이 가능하다. 의사결정도 신속하다. 세계적 기술을 갖고도 일본 전자업체들이 한국의 삼성 등에 뒤지는 건 지나치게 신중한 판단과 느린 의사결정 때문인데,교토 기업엔 그런 폐해가 없다. "(마쓰시게 가즈미 교토대 벤처비즈니스랩 교수)
오너들이 대개 기술자 출신으로 카리스마가 강하다는 것도 특징.호리바제작소의 호리바 마사오 창업자가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엉뚱하게'란 사훈을 고집한 것이나,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사장이 삼류대 출신과 다른 회사에서 떨어진 낙오자를 뽑아 일류대 출신이 가득한 경쟁사를 이긴 것은 카리스마 경영의 상징이다. ◆세계 최고 특화기술
교토 기업들이 제각각 세계 1등 기술을 자랑하는 것도 유사점이다. 호리바제작소는 배기가스 계측기 세계시장의 80%,일본전산은 HDD스핀들모터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무라타제작소는 휴대폰 핵심인 세라믹필터의 세계 수요 중 80%를 공급한다. 옴론은 전철역의 무인개찰기와 현금자동지급기를 각각 1967년과 1971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시마즈제작소는 평사원 다나카 고이치씨가 2002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걸로 유명하다. 그 바탕엔 교토의 전통 기술이 숨어 있다. 1200년 역사의 교토는 전통공예 기술의 보고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정한 전통공예품만 청수요(淸水燒) 등 17개 품목이 있다. 교토엔 이들 공예품을 만드는 기업만 2814개사에 달한다. 시마즈제작소와 호리바의 박막 · 도금 기술은 미세한 표면처리를 하는 전통 불단(佛檀) 기술이 기초다. 청수요의 흙 배합기술이나 데이터는 교세라와 무라타제작소의 파인 세라믹을 탄생시켰다.
대학이라는 교육인프라도 뒷받침됐다. 교토 시내엔 40여개 대학이 있다. 대학생 인구는 전체의 10%로 도쿄의 6%,오사카의 2%를 크게 웃돈다. 전국 1위다. 특히 교토대는 자연과학분야에서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이다.
◆교토 중심 반골정신
교토는 일본에서도 자존심이 가장 강한 도시다. 과거 1000년간 일본의 수도였다는 자부심이 살아있다. 교토 사람들은 아직도 일본의 정신적 문화적 중심은 교토라고 주장한다. '도쿄 촌놈'이란 말을 쓰는 유일한 곳이 교토다.
이런 정신이 기업들엔 강인한 생존력으로 승화됐다. 도쿄 기업들에 절대 지지 않겠다는 근성이 교토 기업 특유의 경쟁력으로 작용한 것.다른 기업이 만들지 않는,남보다 한발 앞선 기술과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도 그래서다. 도쿄 기업들의 '일본식 경영'과 다른 자신들만의 독특한 경영방식을 창조해 낸 이유이기도 하다. 일종의 '반골 정신'이다.
교토 기업의 해외 매출 비중이 대부분 절반을 넘는 것도 같은 배경이다. 국내 시장은 도쿄 기업들이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로 눈을 돌렸다.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고,국내로 역진출한 게 교세라 무라타제작소 등의 성공스토리다. 히노 나오키 교토상공회의소 기획실장은 "교토 기업들은 본사를 교토 밖으로 옮기는 걸 금기시한다"며 "그런 가치관이 교토 기업의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교토=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