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투기세력과 전면전 선언

[News+] "유로 지키겠다"‥근본처방엔 한계
1999년 유로화 출범은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지속돼온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반기(反旗)였다. 50여년간 단일 기축통화 역할을 해온 달러화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유로화 출범을 계기로 달러-유로의 이중 기축통화 체제를 점쳤다. 하지만 섣부른 낙관으로 결론이 날 운명에 처했다.

그리스발(發) 재정위기로 유로화는 연일 급락세다.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때 유로당 1.59달러까지 올라갔던 유로화 가치는 지난 7일1.27달러로 20% 넘게 떨어졌다. 최근에는 헤지펀드 공격까지 가세해 낙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주에만 달러화 대비 4.3% 하락했다. 2008년 10월 첫째주 이후 최대 낙폭이다. 유로화 가치 붕괴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나아가 유럽연합(EU) 전체의 괴멸로 직결될 수 있다. 유로존 16개국 정상회의(7일 · 현지시간)에 이어 9일 긴급 EU 재무장관 회의를 소집,유로화 사수 방책을 논의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유로존은 초(超)비상상황"이라고 진단할 정도로 유럽 지도자들이 느끼는 사태의 심각성은 간단치 않다.

정상들과 재무장관들은 유로화 안정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full range of means)'을 동원하기로 했다. 동시에 유로존 체제를 흔드는 외부 세력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유로그룹 의장인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전 세계적으로 조직화한 세력이 유로화에 공격을 퍼붓고 있다"며 시장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선전포고의 1차 대상은 헤지펀드와 국제신용평가사들로 추정된다. 유럽 국가들이 유로화 방어를 위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항구적인 재정 안정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스발 재정위기가 유럽 전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를 위해 EU 국가 공동으로 '긴급 안정기금(stabilization fund)'을 조성하기로 했다.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에 1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것과는 별개다. 이 기금은 그리스처럼 재정위기에 빠진 나라의 국채를 매입하는 데 쓰인다. 규모는 아직 미정이다. 둘째는 헤지펀드와 신용평가사 등 금융시장 참여자들에 대한 규제 강화다. 헤지펀드는 유로화 하락을 부추기며 환투기를 노렸다는 혐의를,신용평가사들은 유럽 재정위기를 증폭시켰다는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셋째는 회원국에 대한 재정 건전성 감독이다. 재정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유로존 내부 단속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유로존은 유로화 출범 당시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하는 등 가입 자격을 엄격히 규정했다. 하지만 2010년 유로존 국가들의 평균 재정적자는 6.6%에 달해 실효성이 없어진 상태다.

문제는 이 같은 수단들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다. 월요일 개장하는 금융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시장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증시와 유로화 급락을 막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유럽 재정위기 확산을 막을 근본 대책이 되기는 어려울 것"(크리스 럽스키 도쿄미쓰비시UFJ은행 이코노미스트)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연구원도 "그리스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한 긴급 안정기금은 각국의 이해가 달라 실제 설립과 자금 집행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며 "유로화 과매도 국면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심리적인 안정 조치로 봐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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