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한국화의 '眞美' 한꺼번에 감상

'조선망국 100주년 추념전'…16~30일 간송미술관에서
서예 · 산수 · 인물 · 화조도에 두루 능했던 심전 안중식(1861~1919년)은 일찍이 소림 조석진과 함께 관비생(官費生)으로 중국에 유학했다. 도화서 화원을 거쳐 양천 · 통진군수를 지낸 그는 1894년 갑오경장으로 도화서가 폐지되자 1901년 경묵당을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1912년 서화미술회를 조직해 후진 양성에 힘쓰며 한국 근대 회화의 새장을 열었다. 심전을 비롯해 소림 조석진,추범 서병건,연향 이창현,지운영,민영익,김응원,정대유,고희동 등 한 · 일 병합 이후 활동했던 쟁쟁한 화가들의 작품을 모은 근대 회화전이 열린다. 우리 문화유산의 보물창고로 불리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오는 16~30일 마련하는 올봄 정기 전시회 '조선망국 100주년 추념전'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근대 한국화의 형성과 변모 · 완성 과정을 훑어볼 수 있는 대표작 100여점이 한꺼번에 전시된다.

안중식,조석진은 물론 당시 60세 였던 서병건부터 마흔살 아래로 근대 한국화의 서막을 알린 고희동,추사 문인화풍을 계승 · 발전시킨 지운영 · 민영익 · 김규진 작품까지 20세기 그림과 글씨를 아우른다. 이들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의 '진경 정신'이 들어간 그림과 추사의 문인화풍을 계승한 그림,오원장승업의 중국풍그림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1910년대 근대 한국화의 백미는 역시 안중식의 '성재수간(聲在樹間)'.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의 '추성부(秋聲賦)'를 화제(畵題)로 그린 가로 52.8㎝,세로 140.5㎝의 대작이다. 구양수가 밤에 책을 읽다가 가을 소리에 놀란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심전의'한산충무(閑山忠武)'는 1915년 잡지'청춘'에 실린 삽화작품이다. 특유의 늠름한 얼굴을 한 이순신장군이 난간에 기대고 있어 심전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항일정신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심전 절정기의 득의작 중 하나인 12폭 산수병풍을 비롯해 '환희포대(歡喜布代 巾 )''탑원도소회도(塔園屠蘇會圖)''천향부귀(天香富貴)''죽림쌍작(竹林雙雀)'등도 바깥 나들이를 한다. 심전이 오원의 장식적 화풍을 계승한 만큼 당시 신흥 사대부층이 선호했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이에 비해 석촌 윤용구를 비롯해 김용진 · 민영익 · 나수연 · 김규진 등은 추사의 문인화풍을 계승하며 문인화의 전통을 굳건히 지킨 작가들이다. 민영익은 추사의 난죽법을 집안의 내력으로 전수받아 독특한 운미 난죽법(蘭竹法)을 창안했다.

그가 일제강점기에 그린 '석죽(石竹)''묵란(墨蘭)''묵죽(墨竹)' 등의 작품에서는 문인화의 여유롭고 간결한 맛이 느껴진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석파란법을 계승한 나수연의 '석란',난죽을 현대적 화법으로 승화시킨 김규진의 '창산불노',묵죽으로 항일 의지를 묘사한 김진우의 작품,관악산 백련봉에 은거하며 산수화를 그려낸 지운영의 작품에서도 강한 생동감이 다가온다. 간송 전형필의 스승이자 최초의 한국인 서양화가였던 고희동의 작품도 대거 등장한다. 근대 그림의 변천 과정을 훑어보기 좋은 그림이다.

눈속에 핀 강변의 매화를 그린 '설리강매(雪裏江梅)',맑은 시냇가의 빨래터를 담아낸 '청계표백(淸溪漂白)',갈대밭에서 옆으로 가는 '노저횡행(蘆渚橫行)',여인네의 베짜기 풍경을 소재로 한 '직포(織布)' 등이 눈길을 끈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그림은 한 시대의 문화적인 역량을 총체적으로 반영한다"며 "그림을 통해 한 · 일 병합 이후의 혼란했던시대적 상황을 읽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02)762-044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