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잊지못할 그 순간] 방진복 속 여직원들 '눈빛'에 안락한 삶 버리고 귀국

박용인 동부하이텍 사장
4년전 美TI시절 회사방문 계기
개척 의지와 배움 욕구 인상적
스페셜리스트로 부르며 격려
"행복해서 오히려 두렵다. "

2006년 이런 말을 가끔 했다. 돌아보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시절이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라는 안정적인 직장에서,가장 자신있는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미국 생활에 완벽히 적응했고 나는 지역 한인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한마디로 부족할 게 없었다. 외환위기로 몸담고 있던 반도체 회사가 합병되면서 댈러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 천국과도 같았던 생활로 이끈 셈이다. 하지만 이런 행복감에 젖어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탄 것이 훗날 내 삶을 통째로 바꿔놓게 될 줄은 몰랐다. 동부하이텍에서 연락이 온 것은 어느 가을날이었다. 당시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고 했다. 동부의 반도체사업이 어려운 형편에 놓여있었던 데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흔쾌히 받아들였다. 얼마 후 서울 본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편한 마음으로 부천공장을 찾았다. 인생을 바꿔놓을 사람들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안내를 받아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시설을 둘러보며 궁금한 것 몇 가지를 물어봤다. 그러다가 한 여직원과 눈이 딱 마주쳤다. 모든 걸 가린 방진복 사이로 까맣게 빛나는 눈빛이었다. 순간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왔다. 그 눈에는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배움에 목말라하는 애절한 마음도 느껴졌다. 주위를 돌아봤다. 수많은 방진복 속의 눈빛들이 그렇게 나를 보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눈빛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댈러스 한인학교 학생들의 그것과 비슷했다. 미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면서도 주말마다 조국의 언어와 역사를 배우던 학생들이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동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함께 일 해 보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잘 갖춰진 기반과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보았던 방진복 속의 눈빛들이 계속 떠올랐다. 성당에 가도,한인학교에 가도,눈을 감아도 도저히 떠나질 않았다. 순간 "아,어쩌면 내 인생이 바뀔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결심했다. 귀국이었다. 가족들을 설득해 동부하이텍에 합류했다. 한국에서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를 만들어 경쟁력 있는 사원을 육성하는 것.이를 통해 행복한 가정을 많이 만들 수 있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인생을 걸어 볼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날로그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시설투자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한 사업이다. 지금 우리 회사의 가장 큰 경쟁력은 사원들이다. 특히 현장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여직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호칭도 '특별히 소중한 사람들'이란 의미를 담은 스페셜리스트로 바꾸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요즘 직원들의 노력이 점차 빛을 보고 있다. 직원들의 눈에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다. 이 눈빛이 앞으로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의 눈빛으로 바뀔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사명이다. 그들의 눈빛이 살아있는 한 나는 계속 앞으로 뛰어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