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배우기에 푹 빠진 日 "욘사마처럼 말하고 싶어요"

NHK '한글 강좌'에 100만명…말하기·가요콘테스트도 매년 열려

일본 여성 2000여명이 최근 도쿄 유포트홀을 가득 메운 채 한국어로 말하는 이색 이벤트를 펼쳤다. 행사 제목은 '한류! 어학 나이트'.일본 NHK TV의 한글 강좌 프로그램 팀이 마련한 외부 행사였다.

입장료는 좌석에 따라 1층 5000엔과 2층 3500엔으로 비싼 편이었지만 대부분의 여성 참가자들은 이를 기꺼이 지불했다. 드라마 '내조의 여왕'으로 뜬 한류배우 윤상현을 보기 위해서였다. 윤상현은 특별 게스트로 초청돼 참가자들과 함께 '내조의 여왕' 한 장면을 연기했다. 일본 여성들이 한국어로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코너도 마련됐다. 이 장면을 시연하기 위한 경쟁은 뜨거웠다. 윤상현은 드라마 성공을 발판으로 지난 3월 소니뮤직을 통해 싱글앨범 '마지막 비'를 일본에서 내놓고 가수로도 데뷔했다.

NHK 측이 행사를 마련한 이유는 'TV로 한글 강좌' 프로그램의 열기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층의 참여가 높아지고 있는 데다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늘면서 한국어에 대한 수요가 덩달아 늘었다는 분석이다.

주일한국문화원에 따르면 NHK 한글강좌 프로그램의 연간 교재 판매량은 TV 22만부,라디오 8만~9만부 등 30여만부에 달한다. 교재 없이 시청하는 사람은 3~4배나 된다. 줄잡아 100만명 이상이 한글 강좌 프로에 동참하고 있다. 이는 전체 시청률의 1%에 해당된다. 한류가 단순히 대중문화 즐기기에서 벗어나 한글 공부로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NHK 측은 한글 강좌에서 젊은층을 겨냥한 내용을 대폭 늘리고 있다. 최신 K-POP을 자주 소개하면서 젊은 층에게 인기있는 연예인을 게스트로 출연시키고 있다.

40~50대 중년 여성들로부터 시작된 한글 배우기가 30대 여성과 남성으로 번지고 있다는 게 방송사 측의 분석이다. 20대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게 세련된 감각으로 받아들여지는 추세다.

이 같은 한글 배우기 붐을 촉발시킨 곳은 단연 NHK다. 1984년 한글 강좌를 개시했고 드라마 '겨울연가'를 방영하며 한류 붐을 이끌었다. 2004년에는 '겨울연가'를 한글로 소개하는 코너도 마련했다. 지금은 매주 수요일 자정부터 25분간 본편을 방송하고 토요일 오후 6시35분에 재방송한다. 조희철 도카이대 교수가 강사로 나서고 배우 호소카와 시케키와 한국인 모델 김영아 등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NHK라디오도 매일 본편과 재방송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이들 프로그램은 한류 드라마와 가요 등을 텍스트로 적극 활용한다. 한류스타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자주 접하면서 웬만한 일본인들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등의 간단한 인사말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덕분이다. TV 광고에도 한국어가 등장했다. 한글 강좌를 시청하는 한 수강생은 "방송물을 녹화해 반복해서 공부한다"며 "라디오 프로는 퇴근길이나 운동하는 중에 듣기도 한다"고 말했다.

방송에서 시작된 한국어 배우기 열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주일한국문화원이 세운 세종학당에는 일본인 364명이 몰려 초급반부터 상급반까지 수강했다. 민간 차원에서 한국어 말하기 대회,한국가요 콘테스트 등도 매년 열리고 있다. 한국어 능력시험에 응시한 일본인은 1997년 1529명에서 지난해 1만444명으로 늘었다. 2003년 한국어 과목을 개설한 고교는 219개(6476명)였지만 2007년에는 426개(8865명)로 불었다.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전문성이 부족한 교사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비인기 과목 교사가 한국어를 가르치거나 일본에 온 한국 유학생이 가르치기도 한다.

시미즈 주우이치씨는 "보아나 소녀시대 등에 매료된 고교생은 영어 대신 한국어를 외국어로 선택해 배우기도 한다"며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점점 멋있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