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스파르타쿠스

사극(史劇)은 역사를 빌려 세상과 사람을 그린다. '포청천'은 청렴강직한 관리,'대장금'은 집념과 노력으로 꿈을 이루는 여성,'이산'은 기득권층의 권력 다툼 속에서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는 지도자,'추노'는 사랑과 우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남자를 다룬다.

사극의 경우 결말이 정해져 있는 만큼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성격 규정 및 세부적인 구성이 중요하다. 다행히 옛날이야기란 전제 덕에 전개와 표현 모두 자유롭다. 장금과 이산(정조대왕) 이야기에 지고지순한 사랑이 곁들여진 게 그렇고 '추노'의 노출용 차림이 그렇다. 미국 사극 '스파르타쿠스'(OCN)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내용 아닌 표현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는 수사극 중심의 케이블TV에 새로운 장르로 등장,평균시청률 2~3%를 기록하면서 엇비슷한 소재와 전개로 시들해지는 듯하던 미드 열풍에 다시 불을 붙였다.

주인공은 로마 공화정 말기(BC 73~71년) 발생한 노예 반란을 이끈 전설적 인물 스파르타쿠스다. 4월부터 방송된 시리즈 1에선 최고의 검투사가 돼 아내를 되찾는 것만이 목적이던 스파르타쿠스(앤디 위필드)가 노예들의 처지에 눈뜨면서 지도자로 변하는 과정을 다룬다.

의욕만 넘칠 뿐 무모하던 그가 힘을 기르고 인간관계에 눈뜨는 게 기둥줄거리이고,신분 상승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귀족 바티아투스와 그 아내의 욕망은 양념이다. 문제는 지나친 폭력과 과도한 노출,포르노에 가까운 성애 장면이다. 거대한 서사극이란 평도 있지만 잔인하고 야한 화면은 TV 속 폭력과 선정성의 한계를 의심하게 만든다. 'R등급(성인 시청가)'으로 유료채널(STARZ)에서 방송된 미국과 달리 일반 채널에서 방송되고 본방송은 밤12시지만 재방송은 훨씬 이른 10시에 이뤄지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자극은 더 큰 자극을 부른다. 최근 10대들이 길 가던 여중생을 오토바이 도둑으로 몰아 끌고간 뒤 성폭행,추락사하게 만든 사건은 영화 '나쁜 남자'를 연상시킨다. 어른 중에도 노골적인 장면의 잔상 때문에 잠을 설쳤다는 이들이 있는 만큼 청소년에게 미칠 영향이 없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드라마의 내용과 표현 수위는 단순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19세 등급물의 유 · 무료 및 방송시간대에 관해선 보다 엄격한 척도와 감시가 필요한 것 아닐까.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