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북한과 연애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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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주범' 간접증거마저 외면한 나라의 진정한 역량은 위기 시 대처방식에서 드러난다. 위기를 당했는데도 정론이 바로 서지 못해 우왕좌왕하거나 '중구난방(衆口難防)'의 담론만 무성하다면,요행과 우연으로 살아가는 나라다. 반대로 평소에는 갑론을박하다가도 위기가 닥치면 소아(小我)를 넘어 대동단결하는 공동체라면,천년의 삶을 기약하는 나라다.
진실 불편하다고 억지써선 안돼
우리 사회는 어떤가. 지금은 천안함 비극에 대한 애도를 끝내고 나라를 위해 꽃잎처럼 스러져 간 용사들의 호국의지에 따라 그동안 해이해졌던 국가의식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때다. 그럼에도 정략적인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고 호사가들의 관심에 불과한 콩깍지 같은 이야기들이 범람하고 있어 유감이다. 심증으로 볼 때 이번 사태의 주범은 북한이다. 냉전수구식 논리에 익숙한 결론이 아니라 과거 북한의 행적에 대해 축적된 '합리적 의심'의 결과가 그걸 말해준다. 그럴 만한 근거를 가지고 의심을 하는 것이 '합리적 의심'의 실체가 아닌가. 경찰은 현행범처럼 명백한 물증이 없다고 해서 혐의자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의심할 근거가 있으면 체포한다. 이런 점에서 천안함 사태에서 북한을 지목하게 된 것은 '합리적 의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또 이에 대한 근거도 상당하다. 어뢰에 의한 공격임을 말해주는 간접적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 군의 잘못인 양 사고 수준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에 국방부에서 천안함 민군 합동 조사단 중 교체를 요청한 서프라이즈 대표가 그렇다. 그는 조사단의 일원이면서도 조사단의 활동에 성실하게 참여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직함을 이용하여 자신의 평소 의견인 좌초 · 충돌설을 거침없이 주장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런가 하면 그를 추천한 민주당도 이 사태와 관련해 북한의 소행으로 의심하는 것조차 극도로 꺼리는 태도를 보여왔다.
민주당이 합리적 의심조차 거부하는 이유가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졌을 때 '북풍(北風)'이 불어 지방선거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면,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아둔한 소치다. 권력의지에 매몰되어 대한민국의 존속과 지속 가능성에 관심이 없다면 어떻게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수권정당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천안함 사태를 바라보는 올바른 태도는 그 비극의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방선거에 득이 되는가 혹은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하는 점에만 관심을 갖는다면,공동체의 안위를 걱정하는 '대한민국인(人)'다운 사고는 아니다.
사실과 진실에는 호 · 불호를 떠나 엄숙함이 있다. 그렇기에 불편하더라도 진실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친북적이고 종북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6 · 25가 북한의 남침에서 시작된 참극임을 사실로 인정해야 하며,북한이 1987년 KAL 858기를 폭파시킴으로써 무고한 승객 115명을 죽게 만든 테러행위를 자행한 것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연애할 때 진실을 보지 못한다. 상대방이 하품을 해도 예쁘고 심지어 신경질을 내도 예쁘게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눈에 콩깍지가 씌었었구나" 하고 탄식하게 된다. 천안함 침몰의 수많은 간접적 증거를 보고도 북한이 그럴 리 없다고 강변한다면,북한과 연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규명하는 노력의 와중에서 관심의 초점은 "그것이 알고 싶다"가 되어야지 "그것이 믿고 싶다"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것이야말로 북한과 연애에 빠진 사람처럼 북한을 절대로 연루시켜서는 안 된다고 억지를 부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마음 속에 새겨둬야 할 엄숙한 화두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