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교토식 경영' 배우기 열풍] (6) "10년뒤 히트칠 제품 만든다"…130년 R&D정신 노벨상 일궈

(6) 시마즈제작소 'R&D 올인'
시마즈家의 '발명 DNA'계승
매출의 8% 연구개발에 투자
첨단 장비.부품 줄줄이 쏟아내
#장면 1

1930년 어느 날 일본 도쿄의 황궁.쇼와 천황은 '일본의 10대 발명가'로 선정된 이들을 황궁으로 불러 만찬을 베풀었다. 이 자리엔 교토에서 달려온 시마즈 겐죠도 참석했다. '일본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그는 '일본 최초'란 타이틀을 가진 발명품을 178건이나 남긴 일본의 간판 발명가다. 대표적인 발명품이 X-선 촬영장치다. 독일 뢴트겐의 발명보다 불과 10개월 정도 늦었다. 일본 최초로 발명한 통신용 축전지는 러 · 일 전쟁에 참전한 함선에 장착돼 승전에 기여했다. 시마즈제작소의 창업자인 그의 아버지도 일본인 최초로 하늘을 나는 열기구를 띄운 발명가였다. #장면 2

2002년 겨울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스웨덴 황실이 노벨상 수상자를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만찬장에 작은 체격의 일본인 한 사람이 앉아 있다. 평범한 샐러리맨 출신으로 노벨상을 받은 시마즈제작소의 다나카 고이치씨였다. 그는 단백질 분자를 분리해 정밀분석이 가능한 이온상태로 떼어 내는 방법을 고안해 노벨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의 수상이 특별히 주목을 받은 것은 석사나 박사 학위가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게다가 수상 당시 그의 직책은 평사원이나 다름없는 주임이었다. 소속된 회사도 매출액 2000억엔 규모의 중소기업이었다.

일본 교토의 대표적인 장수기업 시마즈제작소.13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회사의 사훈은 '기술개발(R&D)을 통한 사회 공헌'이다. 기술개발을 중시하는 창업자 정신은 1세기를 넘게 이어져 '일개 종업원'이 세계 최고의 영예라는 노벨상을 수상하는 대형 사고(?)를 치기에 이르렀다.

◆연구개발 중심기업

교토 중심 나카교구에 있는 시마즈제작소 본사는 중심가의 1개 블록 반을 차지하고 있다. 오래 전에 터를 잡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줄지어 늘어선 저층 건물들은 낡아 보였다. 겉모습만 봤을 땐 '연구개발''첨단'이란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바뀌는데 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첨단X-선 촬영장치, 항공기용 부품, 환경 · 산업용 계측기기 등 쇼룸에 전시된 주력 제품을 둘러보면서 첨단 제품을 만들어 내는 기업이란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마즈제작소의 기술 개발에 대한 집착은 뿌리가 깊다. 이 회사가 설립된 시점(1875년)은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 수도가 교토에서 도쿄로 옮긴 후였다. 1000년 고도 교토 사람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교토 사람들 사이에선 도쿄를 이길 수 있는 길은 기술 개발 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창업자 시마즈 겐조도 그런 생각을 가진 한 사람이었다.

시마즈제작소의 기술개발에 대한 집착은 교토 기업 중에서도 특별히 더 유별나다. 이 회사의 연구개발 투자비는 전체 매출액의 8%수준에 달한다. 일본 전체 기업 평균(3%)이나 전기기계업종 평균(5%)을 크게 웃돈다. 연구개발 인력 비중도 높다. 박사 80여명을 포함해 전체 직원(3166명)의 3분의 1인 1066명이 연구개발에 종사하고 있다.

◆오늘의 '밥'보다 내일의 '씨앗'이 회사의 연구개발 풍토는 좀 특이하다. 대표적인 게 돈 되는 제품보다 남이 안 만드는 제품을 만들려는 풍토다. 노벨상을 수상한 질량분석기 개발도 학계에서 연구하는 학자가 거의 없었기에 가능했다.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개발의 폭과 깊이를 상대적으로 제한하지 않는 점도 특징적이다.

다만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서 인지 이 회사의 연구개발 풍토는 좀 과장돼 알려진 측면도 없지는 않다. 대표적인 게 '직원들이 하고 싶어 하는 연구를 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요시다 요사이가주 이사(기반기술연구실장)는 "회사가 시장 트렌드를 분석해 개발 아이템을 지정해준다. 그 아이템을 팀이 공동으로 연구한다. 그 범위 내에선 연구자의 재량권이 상당히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개발의 목표는 10년 뒤 상용화할 수 있는 제품이다.

'기초과학을 활발히 연구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다소 다른 설명이 나왔다. 기술추진부의 마에다 다쿠미 부장(공학박사)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대학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를 할 수는 없다. 다만 세계 최초 제품을 만들기 위해 다른 회사들보다는 더 기초적인 수준까지 연구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연구개발 풍토는 이 회사의 장수비결이기도 하다. 요시다 이사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자세를 유지하다보니 매출이 일어나는 히트작이 꾸준히 이어졌다"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자 그 이후

노벨상 수상 직후 일본 언론들은 노벨상 효과를 돈으로 환산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 회사 임직원들은 노벨상의 수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측정할 수 없는 간접적인 효과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시마즈제작소 직원들이 생각하는 가장 큰 성과는 자신감이다.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신입사원 모집에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모이는 것도 성과다. TV 프로그램 등에 회사 이름이 자주 노출되면서 광고 효과도 보고 있다.

사카노시타 다케시 홍보과장은"직접적인 효과라면 같은 품질이면 시마즈 제품을 선택하는 고객이 늘어난 정도"라고 설명했다. 노벨상을 받은 다나카씨의 요즘 근황은 어떨까. 그는 노벨상 수상을 기념해 만든 '다나카 고이치 기념 질량 분석 연구소'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직급은 연구개발 전문직인 '펠로우'.부장보다 높고 이사보다 낮은 등급이다. 지난달에는 노벨상 수상의 테마였던 단백질 질량 분석 시스템의 성능개선을 연구과제로 제출해 국가로부터 34억엔(약 400억원)의 연구지원비를 받게 됐다.

교토=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