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잊혀지는 선수될까 불안했지만 우승 자신감은 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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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개월만에 美LPGA 우승 박세리 선수한국 여자 골프의 간판 스타 박세리 선수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최근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 매그놀리아 그로브CC에서 열린 미국LPGA투어 벨 마이크로 클래식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컵을 쥐었기 때문이다.
34개월 만에 느껴본 짜릿한 순간.그동안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던 박 선수는 "무엇보다 자신을 믿어준 팬들에게 보답할 수 있어 기뻤다"며 연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2006년 6월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2년 넘는 슬럼프에 종지부를 찍었을 때의 기쁨 못지않다"며 "우승을 못해도 좌절하지 않고 골퍼로서 인생의 원리를 배우려고 노력한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오랜 경험이 있었기에 담담하게 경기 결과를 수용할 수 있었고,그것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지혜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지난 19일(현지 시간) 사이베이스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위해 미국 뉴저지주 글래드스톤 해밀턴팜GC를 찾은 박세리 선수를 만나 근황을 들어봤다.
▼우승 공백 기간이 길어 힘들었겠어요.
"우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프로 선수는 우승을 했다고 해서 자신을 과신해도 안 되고 한동안 우승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해서도 안 됩니다. 성적이 부진하면 삶도 무척 힘들어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팬들도 많았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착잡해지는 게 사실이죠.사람들한테 잊혀질까 봐 불안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부담은 선수가 짊어져야 할 숙명 같아요. 대회 때마다 140명 선수 모두가 1등을 하려고 사력을 다하잖아요. 우승 횟수를 쌓을수록 우승이 생각보다 쉽게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더 잘 알게 돼요.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해도 기대했던 결과가 나온다고 장담할 순 없거든요. 그래서 인내력이 필요한 거죠.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됐어요. 우승을 놓칠 때마다 속상한 건 사실이지만 이런 깨달음 덕분에 그 동안 잘 버텨낼 수 있었어요. "▼하루 연습량은 얼마나 되죠.
"반나절 정도 몰입해요. 쇼트게임 연습을 가장 많이 하죠.어떤 날은 쇼트게임을 많이 하고 다른 날은 롱게임을 주로 하는 식으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요. "
▼오랜 기간 우승을 못한 게 슬럼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2005년께 샷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슬럼프를 겪은 적이 있었죠.물론 욕심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힘드는 게 사실이죠.하지만 대회는 매주 있고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노력이 쌓이면 언젠가 자신의 가치와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오지요. 많은 팬들이 지켜봐 준다는 게 가장 큰 자산이고 버팀목입니다.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결국 골퍼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고 있어요. 우승을 못해도 골퍼의 삶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그래야 쉽게 좌절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수면량은? 혹시 보약도 챙겨 먹는지.
"7~8시간 정도 자는데 규칙적으로 수면을 취하려고 노력합니다. 요즘은 혼자 다니기 때문에 보약 같은 것은 먹지 않아요. 예전에도 먹은 보약보다 버리는 보약이 많았어요(웃음).보약을 잘 챙겨먹지 못하는 스타일입니다. 대신 비타민을 매일 먹는데 알약이라 먹기 편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를 꼽는다면.
"1998년 우승한 US여자오픈이죠.외환위기로 모두 어려울 때 우승해 국민들에게 감동을 많이 준 것 같아요. "
▼한국에 글로벌 기업들이 많은데 메인 스폰서가 없는 이유는 뭔가요.
"한국 대기업들은 대회 성적에 많이 집착하는 것 같아요. 그게 시장원리라면 할 말이 없지만 아쉬운 게 사실이죠.세계 무대에서 실력을 뽐내려면 든든한 스폰서가 필요합니다. 골프는 개인운동이기 때문에 무척 힘들어요. 회사 이미지와 맞으면 믿고 밀어주고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우승으로 보답하는 풍토가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팬들과 블로그 혹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교감할 필요도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다 보면 소홀하게 될까 봐 겁이 나 시작을 못하고 있어요. 팬들 한 분,한 분의 궁금증을 다 풀어드리고 싶은데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아요. 성심성의껏 못할 바에는 처음부터 시작을 안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
▼운동에 전념하다 보니 많은 것을 희생한다는 생각이 들 때는 없는지.
"원해서 한 것인 만큼 그런 생각은 안 들어요. 최정상의 자리에 가기 위해선 잃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웃음).스스로 원했고 선택한 삶인 만큼 후회는 없어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월급쟁이들이 꼬박꼬박 출근하는 것처럼 나도 연습하고 대회에 출전하는 거죠.물론 추억을 많이 만들지 못한 게 아쉬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봅니다. 인생 시작은 30부터이고 가족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의미있는 삶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자유시간을 한 달간 갖는다면 뭘 하고 싶은지.
"솔직히 다른 건 모르겠어요. 딱 한 가지,결혼하기 전에 남자친구와 편하게 여행 한 번 갔으면 좋겠어요. 길지 않아도 다들 하는 것 아닌가요. 짬을 내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돼요. 애인한테 늘 미안하죠.이 나이에 남자친구가 없으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요. 어렸을 땐 '남자친구 있냐'는 질문에 '있다'고 하면 큰 일 나는 줄 알았죠.그래서 '없다'고 답했는데 지금은 똑같은 질문 받으면 없어도 있다고 할 것 같아요. 남자 친구가 안정감을 갖는 데 큰 힘이 돼요. 말을 안해도 뭔가 교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죠."
▼남자 친구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던데 데이트는 자주 하나요.
"사생활 얘기는 잘 하지 않는데….남자 친구가 운동을 무척 좋아해요. 골프는 보기 플레이 정도죠.한 때 야구 매니지먼트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프로 선수 생활을 잘 이해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달에 한 번도 제대로 못 봐요. 매주 대회를 다니니까 시간이 없어 항상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렇지만 매일 전화로 많은 얘기를 나눈답니다. 그날 경기 분위기를 전하면 좋은 얘기를 많이 들려주고 그래요. 그게 경기를 치르는 데 큰 도움이 돼요. "
▼결혼은 언제쯤….
"아직 날짜를 정하지 않은 만큼 언제 결혼할지는 모르겠어요. 결혼이라는 게 어느날 갑자기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더 늦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20대 초반도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시기는 한참 지난 셈이죠.결혼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늦어도 2년 안에 할 계획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시집 못 가고 혼자 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
▼결혼하면 미국에서 살 계획인가요.
"그럴 것 같아요. 미국 생활에 익숙해진 데다 결혼해도 당분간 선수 생활을 계속할 계획이니까요. 언제 은퇴할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물론 한국도 자주 찾게 될 겁니다. 은퇴한 후에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후배를 양성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
▼최경주는 아마추어에게 그립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하는데 아마추어들이 핸디캡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뭔가요.
"세 가지를 얘기해주고 싶어요. 먼저 그립을 제대로 잡아야 파워를 낼 수 있어요. 일관된 샷을 하기 위해선 자세(posture)가 중요하고 마지막으로 정렬(alignment)이 바로 돼야 합니다. 세 가지만 교정받으면 골프를 즐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아마추어들의 많은 오류는 욕심에서 빚어집니다. 무리한 샷은 게임을 망칠 수 있어요. 골프장에 즐겁게 나갔으면 즐기면 되는 건데….한 타라도 더 줄여보려고 무리하는 순간 역효과가 나타나죠.골프는 변수가 참 많은 운동이죠."
▼올해 9월16~19일 열리는 '메트라이프 · 한국경제 KLPGA챔피언십'에 참가할 계획은."참가를 적극 고려해 보겠습니다. 이런 대회가 한국 골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어요. 한국경제신문의 대회 개최를 축하합니다. "
글래드스톤(미 뉴저지주)=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