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투쟁으로부터의 '해방'

경주 발레오 노조원들은 요즘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것 같다. 노조원 95%의 찬성으로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를 탈퇴,투쟁의 굴레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불필요한 연대파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상급단체의 정치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해서 시비걸 곳은 아무데도 없다. 민주노총의 탈퇴는 발레오 노조 입장에서 보면 투쟁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투쟁은 많은 노조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발레오 노조는 지금까지 금속노조 경주지부의 파업을 주도해온 '싸움꾼'으로 노동판에선 힘 깨나 있는 실력자로 통했다. 비록 노조원 수(605명)는 적지만 투쟁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강성이었다.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정치파업에는 빠진 적이 거의 없다. 이런 노조가 금속노조와 결별을 선언하고 새로운 노동운동을 벌이겠다고 다짐했다. 발레오 노조는 어떤 이유에서 바뀌게 됐을까. 그 답은 '법과 원칙'에 있다.

발레오는 직원 전원이 정규직이다. 여기에 경비원 평균 연간 임금이 7600만원,청소원과 식당아줌마의 경우 7200만원이나 하는 고임금 사업장이다. 시장가격보다 높은 임금을 지불하다 보니 회사의 경영도 어려워졌다.
결국 회사는 지난 2월 경비원을 생산직으로 배치전환하고 경비업무를 외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경비원들은 생산직으로 전환배치되는 조건이어서 임금은 깎일 염려가 없다. 그럼에도 노조는 계속 반대하며 파업을 벌였다. 고액을 받는 경비원의 외주화에 노조가 반대한다는 사실이 지난 3월22일자 한국경제신문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을때 많은 국민들은 정말 이상한 노조란 시선을 보냈다. 이날 아침 인터넷에 뜬 기사를 클릭한 독자 수만도 30만명이 넘을 정도였다.

회사는 "이번만은 노조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겠다"며 직장폐쇄로 맞섰다. 그리고 93일간 지속된 노사분규 기간의 임금에 대해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노조지부장에 대해선 불법파업을 벌인 혐의로 고발,구속시켰다. 결국 노조가 법과 원칙에 무릎을 꿇고 새롭게 태어난 셈이다. 노조가 극렬투쟁을 겪은 뒤 잘못을 깨닫는 경우는 많다. 한때 골리앗투쟁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현대중공업 노조는 1994년 61일간 장기파업을 벌인 뒤 달라졌다. 회사 측의 파업기간 중 무임금 적용과 파업 주동자에 대한 해고가 이어진 게 주효했다. 15년째 무분규 교섭타결을 이어오고 있을 정도다.

GS칼텍스 노조도 마찬가지다. 전국을 떠돌며 장기간 불법파업을 벌였던 이 노조는 파업이 끝난 뒤 대의원들의 압도적 찬성으로 민주노총을 탈퇴해버렸다. 투쟁의 덫에 빠진 민주노총에 기댈 게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파업이 끝난 뒤 GS칼텍스 노조원들은 노조지도부에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지도부의 투쟁노선에 속았다. " "몇몇 지도부가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우리를 도구로 이용했다. " 그 뒤에도 민주노총의 탈퇴 러시는 끊이지 않고 있다.

"발레오 조합원 대부분이 금속노조 파업에 내몰려 온 것을 너무 후회하고 있다"는 류홍렬 신임 발레오 노조사무국장의 지적은 투쟁노선을 걷는 민주노총의 운동방향이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대변해주고 있다. 발레오 노조는 지금까지 한번도 걷지 않았던,희망과 꿈이 기다리는 상생의 길을 향해 떠났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