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요동‥속타는 기업] 정치ㆍ군사ㆍ경제 복합위기…기업 "장기화 되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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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기 앞둔 항공ㆍ여행업 울상
ITㆍ자동차 등 수출기업도 "환율 폭등 반갑지만은 않다"
"당장 특별한 대응책이 있을 리 없지요. 그저 견디는 수밖에…."
김영용 한국경제연구원장은 25일 천안함 피격에 따른 한반도의 긴장 고조,남유럽의 재정위기 확산 등과 같은 대외불안 요인에 대해 이같이 답답함을 호소했다. 환율 폭등 및 주가 폭락 등과 같은 금융시장 불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으로선 경영외적 변수가 요동치는 환경속에서 적절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北 리스크 파급력 가늠 힘들어
특히 천안함 침몰사태로 촉발된 남북 간 대결구도는 재정위기나 금융위기와 같은 통상적인 경제위기와 달리 파급력을 가늠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기업경영의 최대 리스크로 다가오고 있다. LG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경영자들 사이에는 '정치 · 군사 리스크는 언제나 경제 리스크를 압도한다'는 것이 불문율"이라며 "지금 당장 큰일이 없다 하더라도 한순간에 삐걱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기업경영이요,국가경제"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수출비중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그룹도 최근 환율 폭등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는 반응이다. 수익성이야 개선되겠지만 환율 폭등의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또 남북 간 긴장과 갈등이 예년과 달리 장기화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그동안 발생했던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등은 한국경제 전반의 평가에 내재돼 있는 리스크였지만 '전면전'을 운운하는 최근의 사태는 단기에 소멸되기 어려운 리스크"라고 진단했다. 천안함을 침몰시킨 북한에 대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제재가 가시화되고,그에 맞춰 북한이 반발강도를 높여가는 수순이 추가적인 긴장국면을 몰고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악재는 겹쳐서 온다"
더욱이 남유럽 재정위기 확산으로 촉발된 전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이 또다시 글로벌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최대 시장인 중국이 긴축정책으로 돌아선 것도 '악재는 겹쳐서 온다'는 속설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권오철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은 "2분기 반도체 시황이 여전히 좋고 3분기에도 견조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딱히 특정 요인을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흐름을 볼 때 예감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단기적으로 환율 급등에 따른 기업들의 당혹감도 적지 않다. 대부분 원화의 평가절상(환율 하락) 쪽에 맞춰 외환운용 전략을 짜놓았기 때문이다.
사내 보유 외환이 많지 않은 중견 · 중소기업들이나 해외에서 원자재를 도입하는 업체들은 당초 책정해놓은 금액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 달러화를 구입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7~8월 성수기를 앞두고 있는 항공 · 여행업계는 환율 급등에 잔뜩 울상을 짓고 있다. 원화가치 하락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데다 항공기 리스,유류비 등의 비용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크게 넓히고 있는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TV 등도 종전과 달리 환율 상승에 따른 수혜를 온전히 누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수출비중이 70%가 넘지만 최근 유로화가 약세로 돌아선데다 해외공장 생산비중이 높아 그다지 큰 효과를 기대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전자업계도 수입 부품이나 설비,원자재 등의 구매비용 증가가 수출단가 상승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 구조다. 애플 구글 소니 파나소닉 등의 글로벌 기업이 한국기업들의 글로벌 확장을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있는 분위기에서 외부변수 돌출에 따른 제조원가 상승은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