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돈 주고도 얻지 못한 평화

햇볕정책 결과는 끊임없는 도발
대결상황 인식이 남북관계 출발점
북한이 늘상 내세우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 6월15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이후부터였다. 통일문제의 당사자 원칙을 전제로 두 정상이 합의한 '6 · 15 남북공동선언' 1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은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우리 민족'과는 거꾸로 갔다. 2002년 6월 북 경비정의 서해 NLL(북방한계선) 침범에 따른 2차 연평해전,2006년 1차 핵실험 강행,2008년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살,2009년 2차 핵실험과 그것을 전후한 수차례의 장 · 단거리 미사일 발사,그리고 이번 천안함 어뢰 공격 등에 이르기까지 무도(無道)하고 파괴적인 도발을 일삼아 왔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원색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으로 우리 민족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 것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이게 그들이 말하는 '우리 민족끼리'였고,과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통해 많은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던 남북관계의 실상이다. 남북간의 존재양식을 대립과 갈등에서 대화와 협력으로 치환시켜 북의 개방을 유도하고 이를 통일의 기틀로 삼자는 햇볕정책은 그래서 결국 허상을 추구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우리의 북한 껴안기,궁핍에 찌든 그들에 대한 지원은 계속됐다. '북한 퍼주기'는 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북에 제공된 현금과 현물은 모두 40억4400만달러에 이른다(통일부 집계).관광 대가와 현대그룹의 포괄사업 대가 등 현금이 11억2600만달러,정부와 민간의 인도적 물품 제공과 경협차관,개성공단 기반시설 등 현물지원이 29억1800만달러다.

여기에 개성공단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지불 규모도 연간 5000만달러 수준이다. 공단에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 수는 4만3000여명,지난해 기준으로 근로자 1인당 임금은 월 70달러를 웃돌고 식대 등 부대비용을 포함하면 100달러 선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돈을 근로자들이 직접 받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기업들이 임금명목으로 지급하는 달러는 고스란히 북한 당국 손으로 넘어가고,근로자들에게는 그들의 공식환율로 계산한 북한 화폐로 나눠줄 뿐이다. 게다가 근로자들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월 20달러 미만의 금액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북한에 흘러간 막대한 달러가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돌아온 것은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천안함에 대한 어뢰 공격이다.

우리는 엄청난 돈을 주고도 평화를 얻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남북관계는 다시 대립과 갈등구도의 원점으로 회귀(回歸)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천명한,이제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고 북의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적극적 억제 원칙'의 의미는 간단하다. 확실한 반격으로 방어적 국면을 바꾸고,철저한 맞대응 전략으로 남과 북의 공존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미래의 관점에서 이 같은 대응방식이 남북관계를 크게 후퇴시키고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공존의 틀 자체를 흔드는 나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물론 높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천안함 사태는 예전과 같은 대북 접근방식으로는 결코 남북간의 항구적인 평화를 담보할 수 없고,대결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대화와 협력으로 북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현실을 거듭 확인시켜 주었다. 이런 각성과 현실인식부터 분명히 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남북관계 모색의 출발점이다. 앞으로 남과 북의 장래에 대한 그림을 어떻게 그려나갈지,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하다.

논설실장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