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 가격이 쏘나타보다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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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모델기준 쏘나타 2866만·그랜저 2713만원"닭머리냐 소꼬리냐."
차급보다 내실·성능 따지는 소비자 늘어
3000cc이상은 여전히 차급 중시
새로 자동차를 사려는 소비자들이 차급과 내실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2400cc급을 예로 들어보자.현대자동차에서는 최고 사양 쏘나타와 최저 사양 그랜저가 똑같은 2400cc급이다. 기아자동차 K5와 K7 역시 나란히 2400cc급이 나와 있다. 3300cc급에는 그랜저와 제네시스가,3800cc급에서는 제네시스와 에쿠스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차급이 떨어지는 차종의 최고 사양 차량은 인기가 없었다. 엇비슷한 가격이면 차급을 높이자는 게 대부분 소비자들의 생각이었다. 성능 이상으로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소비자의 특성이 구매 패턴에 나타났던 것.하지만 최근 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경향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쏘나타 2.4냐,그랜저 2.4냐
지난 1월 중순 출시된 현대차 YF쏘나타 2.4 모델은 3개월 만에 1300대 넘게 팔리며 전체 쏘나타 판매대수 중 6%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출고 전 사전계약을 받고 있는 기아차 K5도 2.4 모델 비중이 전체의 약 7%를 기록 중이다. 이전 NF쏘나타 2.4 모델은 출시 초반을 제외하고 줄곧 판매 비중이 전체 쏘나타 중 1~2%대에 머물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미있는 변화다. 한 일선 매장 딜러는 "차급보다 성능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쏘나타와 K5 2400cc 모델을 찾는다"며 "올해 말 새 모델 출시가 예정돼 있어 그랜저의 인기가 떨어진 것도 하위 차급 2.4 모델의 인기가 높아진 원인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2.4 모델만 놓고 비교하면 쏘나타와 K5가 상위 차급인 그랜저와 K7보다 성능이 뛰어나다. 쏘나타와 K5의 최고 출력은 201마력(6300rpm)으로 그랜저(179마력),K7(180마력)보다 한 수 위다. 하위 차급 두 차종의 최대 토크는 25.5㎏ · m(4250rpm).23.5㎏ · m(4000rpm)에 머물고 있는 그랜저,K7보다 힘도 좋다. 연비 또한 무게가 가벼운 하위 차급 차량들이 낫다. 쏘나타와 K5는 1ℓ의 휘발유로 13㎞를 가지만 그랜저,K7의 연비는 ℓ당 11㎞대에 머무르고 있다. 가격은 엇비슷한 수준이다. 2.4 모델 중 가장 싼 차량을 기준으로 할 때 쏘나타와 K5,K7의 가격은 각각 2866만원과 2825만원,2880만원이다. 그랜저는 2713만원으로 하위 차급 차량보다 오히려 저렴하다.
◆배기량 높아질수록 성능보다 차급
3300cc급과 3800cc급으로 넘어가면 차급이 성능보다 중요한 가격 결정 요인으로 바뀐다. 배기량이 큰 차를 사는 고객들이 성능보다 차급을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랜저와 제네시스 3.3 모델은 성능이 거의 똑같다. 최대 토크는 같고 연비 차이는 ℓ당 0.1㎞에 불과하다. 최고 출력 차이 역시 3마력 정도다. 하지만 두 차량의 가격 차이는 500만원 이상이다. 그랜저 3.3은 3592만원,제네시스 3.3은 4129만원이다. 한 달 판매량은 제네시스가 1600~2000대 수준인 반면 그랜저는 200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제네시스 3.8과 에쿠스 3.8로 넘어가면 성능과 가격의 이격이 더 커진다. 두 차량은 최고 출력과 최대 토크가 똑같고 연비만 다르다. 연비는 무게가 가벼운 제네시스가 ℓ당 0.3㎞를 더 간다. 가격이 엇비슷해야 정상이지만 두 차량의 가격 차이는 2000만원에 가깝다. 에쿠스의 가격은 6622만원인 반면,제네시스는 이보다 2000만원 가까이 싼 4798만원이다. 소비자들의 취향도 에쿠스 쪽으로 쏠리고 있다. 에쿠스는 월 평균 1000~1300대가 팔리지만 제네시스는 400대 남짓에 불과하다.
현재 국내 자동차 메이커 중 다른 차급 같은 배기량 차량을 내놓고 있는 곳은 현대차와 기아차뿐이다. 하반기부터는 이 대열에 르노삼성자동차가 합류한다. 연내 출시 예정인 SM3의 상위 모델은 2000cc급이다. SM5와 배기량이 같아지는 셈이다. ◆쏘나타급 혼다차,시빅이야 어코드야?
차급은 소비자들의 주요한 구매 요인 중 하나로 가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국산차 시장에서는 업체별 차급이 대체로 엇비슷해 구분이 용이하다. 현대차의 쏘나타와 같은 급의 차량을 물으면 K5(기아차)와 SM5(르노삼성)라는 답이 바로 나온다. 하지만 수입차로 범위를 넓히면 이 구분이 모호해진다. 수입차 업체들의 차급 구분이 국산차와 상이하기 때문이다.
혼다의 주력 모델인 시빅은 1.8 모델과 2.0 모델로 나뉜다. 상위 차급인 어코드는 2.4 모델과 3.5 모델이 있다. 시빅은 아반떼와 쏘나타의 중간 차급에 해당하는 셈이다. 어코드는 배기량 범위가 훨씬 더 넓다. 현대차와 견줄 경우 쏘나타,그랜저,제네시스 등 3개 차급이 경쟁 차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고급 수입차 브랜드에서는 차급과 배기량의 매치가 한층 더 복잡하다. 아우디의 2.0 모델은 A3부터 A6까지 폭넓게 나타난다. 차급을 중시하는 소비자와 배기량을 중시하는 소비자 모두를 사로잡기 위해 조합을 다양화한 것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