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리스크] '불신의 늪'에 빠진 유럽은행…돈 빌리는 비용 치솟아

리보금리 10개월만에 최고…美은행ㆍMMF, 투자 줄여
"불안감 높지만 유동성 풍부…국제 신용위기까진 안갈 듯"
유럽 은행들의 부실화 우려가 증폭되면서 유럽발 신용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주말 스페인 금융당국이 저축은행'카하수르'에 대한 구제금융을 집행하기로 하자 은행 간 대출금리가 속등하고 있다.

아직은 상황이 심각하지 않지만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휘몰아친 금융위기가 단기자금 시장의 신용 경색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점 때문에 시장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은행 간 대출금리 두 배 이상 높아져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3개월짜리 달러 런던은행 간 금리(리보)는 25일 연 0.54%로 지난 2월 이후 두 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작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은행 간 단기자금을 거래하는데도 상환받지 못할 수 있다고 여길 정도로 불신이 커진 결과다. 리보 금리는 영국 은행연합회(BBA)가 16개 금융회사의 은행 간 단기자금 거래 정보를 받아 집계한다. 씨티그룹은 수개월 내 3개월짜리 리보가 1.5%까지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유럽의 최고 신용등급 기업들이 발행한 30일짜리 기업어음(CP) 금리도 최근 연 0.48% 수준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초에만 해도 0.3% 수준이었다. 유럽 금융사들이 발행한 채권이 부도날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료'도 급등했다. 금융정보회사 마킷에 따르면 유럽 금융사의 5년짜리 채권 1000만유로어치의 부도 위험에 대한 보험료는 17만8000유로(22만달러)로,지난 3월의 9만715유로에 비해 2배 가까이까지 올랐다. ◆미국 MMF,유럽 투자 비중 줄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와 관련,미국의 은행과 머니마켓펀드(MMF)들이 지난 몇 주간 유럽 금융사들에 대한 익스포저(대출과 채권 보유 등 위험 노출액)를 줄여왔다고 전했다.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을 사서 가급적 짧게 보유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약 3조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MMF들의 경우 조금만 운용 패턴을 바꿔도 단기자금 시장이 크게 요동칠 수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28일부터 MMF 보유 자산의 유동성 기준을 강화한 것도 MMF가 몸을 사리는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일부 미국 대형 은행도 그리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은행들에 대한 단기 대출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스페인의 양대 은행인 산탄데르와 BBVA도 다른 은행에 대한 대출을 줄이고 유럽중앙은행(ECB)에 넣어두는 예금을 늘렸다.

WSJ는 단기자금 거래가 위축되고 리보 금리가 급등하는 것은 유럽 은행들이 소위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에 빌려준 약 2조8000억달러에 대한 우려감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들 나라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긴축 정책을 펼 경우 경기 침체가 심화돼 유럽 은행들의 부실 자산이 늘어날 수 있다. 필립 타이슨 MF글로벌 투자전략가는 "유럽의 재정위기가 은행 건전성에 대한 문제로 구체화하며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용위기로 이어질까 촉각아직은 신용위기를 걱정할 상황이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당시 리보 금리가 10배 가까이 치솟았을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각국 정부의 통화 완화 정책에 따라 유동성이 풍부해 글로벌 신용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 10일 유럽 재정위기로 시장이 불안해지자 금융위기 당시 맺었던 ECB 및 일본 · 스위스 · 캐나다 중앙은행과의 달러 스와프 계약을 되살렸다. 2008년 말에는 이를 통한 은행들의 달러 조달액이 5830억달러에 달했지만 지금은 90억달러 수준이다. 아직은 달러 자금을 구하지 못하는 신용 경색이 심각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국발 금융위기 때처럼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서로 대출을 죄면서 신용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투자회사 재니몽고메리스콧의 거이 레바스 신용전략가는 "만약 스페인 정부가 발행한 채권가격이 급락할 경우 이를 보유하고 있는 은행들이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어 대출을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성완 기자/뉴욕=이익원 특파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