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호암상 수상자 중에서 노벨상 나와야죠"

이현재 호암재단 이사장 "외국인에도 수상 문호 넓힐 것"
인재 중시한 호암 '한국의 큰 그릇'
"2008년 미국 과학정보연구소(ISI)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국제 학계에서 자주 인용된 논문연구자(HCR) 500명 가운데 10명이 한국인이며 이 가운데 8명이 호암상 수상자입니다. "

올해로 호암상(湖巖賞) 제정 20주년을 맞는 이현재 호암재단 이사장(81)은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벨상이 호암상 수상자 중에서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호암상은 삼성 창업주인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의 사회공익 정신을 기려 사회 각 분야(과학,공학,의학,예술,사회봉사)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사들을 포상하기 위해 1990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설립했다. 호암재단은 1997년 상의 안정적인 운영과 관리를 위해 제일제당,새한,한솔,신세계,삼성 등 호암의 5개 가족회사가 기금을 공동출연해 만들었다.

이 이사장은 "상(賞)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으면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며 "후보 선정 등에서 연고주의를 철저히 배제하고 이중삼중의 검증 및 정량적(수치적) 분석을 최대한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1994년 각계의 전문가 6명으로 설립된 호암상위원회가 독립적인 권한을 갖고 상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맡고 있다. 특히 후보 선정 등 모든 과정에 삼성 측은 절대로 관여하지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분야별로 7명씩 35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도 시상식할 때 공개될 정도로 비밀에 부쳐진다. 이런 측면에서 호암상은 한국판 '노벨상'으로 일컬어진다.

호암상위원회가 발족할 때부터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이사장은 "특히 예술상의 경우 문학 미술 음악 등을 모두 아울러 1명만을 뽑기 때문에 선정 작업이 가장 어렵다"며 "상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분야별로 돌아가면서 주는 '안배'도 물론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0년 삼성복지재단 이사를 맡으면서 호암재단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호암을 생전에 한두 번 만났다.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있으면서도 인자함을 지녔다고 회고했다. "호암은 산업보국과 인재제일주의를 강조했다. 기업은 국가와 사회의 보호를 받으면서 발전해 왔으므로 여기에 기업은 응당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 고인의 신념이었다. 또 사람이 모든 것을 움직이므로 인재 채용에도 철저했다. 고인은 인재양성 및 중용을 위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처음 도입,확립하는 등 한국의 '큰 그릇'이었다. "

호암상 수상자는 올해까지 모두 101명(여성 13명,단체 7곳 포함).이중 5명이 국가가 선정하는 과학자(8명)에 포함됐다.

상금은 시행초기 1인당 5000만원이었지만 이후 계속 증액됐다. 올해는 호암상 20주년과 호암 탄생 100주년을 맞아 2억원에서 3억원으로 높였다. 그간 노벨상,일본 교토상 등 해외 저명 시상재단과 교류를 통해 후보자 발굴,심사위원 선정,상금 등 운영방식을 개선해 왔다. 교토상은 '살아 있는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 사재를 털어 만든 일본판 '노벨상'이다. 올해 노벨재단에 특별상을 주기로 한 것과 관련,그는 "노벨재단에서 상을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흔쾌히 수락했다"며 "그만큼 호암상의 권위가 높아진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재단창립일인 6월1일 시상식에는 노벨재단 사무총장이 참석한다.

그는 "호암상 수상 대상은 현재 한국계 학자로 한정돼 있다"며 "앞으로 외국인 학자까지 확대하는 등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상으로 발전시켜 110년 역사의 노벨상에 버금가는 상이 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국무총리를 지냈고 서울대 명예교수(총장 역임)이자 학술원 회원(회장 역임)인 이 이사장은 토요일마다 김상주 학술원 원장,이현구 대통령과학기술특보,차배근 서울대 명예교수 등과 서울 근교에 등산을 다니고 있으며 1년에 한두 번은 장거리 산행도 갖는다.

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