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실경산수 붓끝에서 노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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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미산·남농 '운림산방 3대전'에 1000여점 전시
19세기 남종화의 거장 소치 허련(許鍊 · 1808~1893년)을 시작으로 아들인 미산 허형(許瀅 · 1862~1938년),손자 남농 허건(許楗 · 1908~1987년),남도 화단의 거목인 의재 허백련(許百鍊 · 1891~1977년),임전 허문(許文 · 1941~현재),허진(許鎭 1962~현재).
남도 최고의 예맥인 허씨 가문은 한국 미술사에 빛나는 족적을 남겼다. 소치는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남종화를 한국적인 화풍으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1856년 추사가 세상을 뜨자 고향 진도로 낙향해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짓고 화업에 전념했다. 남종화의 한국적 수용과 확산에 기여한 소치와 그 화업을 이은 미산,남농 등 3대가의 작품 100여점을 모은 특별전이 28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서울 인사동 세종화랑에서 펼쳐진다. '200년 서화의 향기'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소치의 산수화 화훼도 사군자 글씨,미산의 실경 산수화,남농의 전성기 시절 주요 작품들이 대거 걸린다.
소치에서 시작된 200년간의 허씨 가문 예술세계를 통해 근 · 현대 한국 미술에서 남종화의 수용과 전개 양상,국내 화단에서 차지하는 운림산방 화맥의 역사적 성격과 미래 등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다.
소치는 '허모란(許牡丹)'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모란에 집착하며 남다른 기량을 보여줬다. 이번 전시에 출품될 소치의 '석모란'(88×41㎝)은 아담하면서도 풍성한 모란의 모습을 힘 있는 운필법으로 그린 작품이다. 붓자국마다 활력이 넘쳐난다. 조선시대 후기 작품 '운림필의(雲林筆意)'도 진도 인근 외딴 섬의 원경,중경,근경을 활달한 필선으로 그려낸 수작.바위를 소재로 한 '영롱영석도(玲瓏靈石圖)'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형상을 떠올리게 하는 추상적 산수화다.
1940년대에 금강산만 열두 번 올랐다는 남농의 실경 산수화도 80여점이나 나온다. 1972년 그린 '추효군도(秋曉群島)'는 추색이 내려앉은 섬의 산과 나무,밭을 그린 작품.아름다운 남도의 풍경이 남농의 붓에 의해 살아났다.
특히 남농은 '삼송도(三松圖)'로 대표되는 소나무 그림을 잘 그렸다. 남종화의 인기에 힘입어 운림산방을 재건한 후 1970년대 시작한 소나무 그림은 서울에서도 널리 유통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1970년대 대표작인 '삼송도' 한 점을 만날 수 있다. 1938년작 '춘하추동',1936년작 '추강어락(秋江漁樂)'은 소치나 미산의 영향으로 정형 산수를 그리던 그가 실경 정신에 입각해 속도감 있는 갈필과 점묘법으로 신남종화풍을 발전시킨 과정을 짐작케 하는 작품들이다. 미산의 작품으로는 활짝 핀 모란을 그린 청장년기의 작품 '석모란 팔곡병풍',산 속 깊은 곳의 풍경을 그린 '심산유거(深山幽居)',산봉우리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그린 '고봉직폭(高峰直瀑)'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정준 인사전통문화보존회장은 "화남의 일원으로 뭉뚱그려져 실제보다 평가절하돼온 허씨 일가의 예술 세계를 한국 미술이라는 지평에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722-221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