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욕심 부려야 나라가 부강해진다

'무소유' 관심 많지만 함정 커
경쟁해야만 경제효율 높아져
1975년 1월 런던에서 쓸쓸한 장례식이 있었다. 꾀죄죄한 떠돌이 다섯 명과 정장한 신사 두 명이 조문객의 전부였다. "가진 물건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뜨내기들을 집에 들였다. 이들이 물건을 훔치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자 아예 집을 내주고 자신은 대학 실험실에서 웅크리고 밤을 드샜다. 점차 조여드는 생활고,아마도 이타심과 관용을 믿어온 신념의 흔들림이 그를 자살을 선택하게 만들었을 듯하다.

이 주인공은 조지 프라이스.그는 원래 미국 IBM의 잘나가는 엔지니어였다. 44세 중년에 돌연 진화유전학에 심취해 가족을 버리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 후 죽기까지 7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진화생물학,게임이론으로 동물행동 설명하기 등에 획기적 논문을 저술했다. 헌 옷가지 외에 가진 것 별로 없이 방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던 흔적이 역력히 남겨진 마지막 거처가 이타주의자 프라이스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를 알아주는 이는 지금도 적다. 그에 비하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행복하다. 저서 《월든》은 인도의 간디 등 애독자 층이 원래 넓다. 요즘에는 환경과 생태를 중시하게 되자 소로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떴다. 특히 한국에서는 무소유 제창자로서 소로의 인기가 드높다. 학창시절 그를 흠모하지 않았던 사람 있던가? 그러나 최근 한국의 소로 재발견 열풍은 지나친 감이 있다.

소로에게는 에머슨(1803~1883)이라는 든든한 후견인이 있었다. 소로는 에머슨 집에 가정교사,조수,정원사 등으로 일하며 기거하다가 월든 호숫가 에머슨의 소유지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이틀을 살았다. 그 때의 생활수기가 《월든》이다. 사실 소로가 지은 집은 깊은 숲 속이 아니라 마을 변두리,그것도 부모 집에서 고작 2.4㎞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주말이면 자주 마을을 들렀고 어머니는 매주 토요일 오두막에 들러 먹을거리를 배달해주었다. 도시 아이들이 집 뒤뜰에 텐트를 치고는 마치 정글 속에서 탐험 생활 하듯이 즐기는 것과 얼마나 다른가?

당시에도 소로의 자연생활을,항시 가꾸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화초와 같은 존재라고 비꼬는 이가 있었다. 납세 거부로 하룻밤 감방살이 한 사건으로 인기가 더해졌지만,고모가 대납해 주었기에 풀려났다. '자연인'으로 칭송 받은 소로는 실제로 타인의 도움에 의존하며 살았다. 얼마 전 유명한 스님의 죽음 이후 무소유 사상이 유행바람을 타고 있다. 물질만능,무절제한 탐욕,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순치되지 못한 자본주의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옳다. 그러나 무소유는 아니다. 나이 들수록 동산과 부동산 구별이 모호해지고,임종시 빈손으로 돌아가는 신세가 됨을 누가 모르나? 그러나 살아있는 긴 세월 생존하고 생활해야 한다. 개인이 욕심도 부려 일하고 서로 경쟁해야 경제 전체의 효율성과 경쟁력이 높아 나라의 지속발전이 가능하다.

자본주의의 부작용에 대한 반성론은 좋다. 무소유를 주장하는 일부 종교인들이 신도들의 왕성한 소유욕구 덕분에 설교할 수 있다.

어렵게 살아가는 저소득 계층에게 무소유는 구름 같은 공염불이다. 소유를 늘리고자 노력하는 다수의 근로자들이 있어야 무소유라는 사치스런 언행이 빛을 발해 불나방을 끌어 모을 수 있다. 프라이스처럼 인간이 이기심뿐만 아니라 이타심에 따라서도 행동한다. 그의 생에서 보듯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비극적 결과가 온다. 소유와 무소유도 마찬가지다. 소유욕의 무한궤도는 잔혹하고,타인에 기생하는 무소유는 기만이고 위선이다. 기업은 세계적 명품 만들기 노력,근로자는 생활수준 향상의 노력,국민이 욕심을 부려야 나라가 부강해진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