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전략적 인내

데니 로먼(새뮤얼 잭슨)은 협상 전문 경관.경찰 내부 부정을 전해준 파트너가 살해되면서 용의자로 몰리자 수사과장 등을 인질로 잡고 타지역 협상전문가 크리스 새비안을 대화창구로 부른다. 특수기동대(SWAT)가 동원된 일촉즉발 상황에서 새비안은 진실 규명에 나선다.

존 큐(덴젤 워싱턴)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아버지.의료보험이 없어 아들이 죽을 지경에 처하자 병원을 점거한다. 아들을 심장수술 대기자 명단에 올려달라는 인질범과 빨리 진압하려는 경찰이 대치한 가운데 베테랑 협상가 프랭크 그림이 중재를 맡는다. 앞의 것은 1998년 작 '네고시에이터'.뒤의 것은 2002년 작 '존 큐'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엔 이 밖에도 수시로 협상가가 등장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력 진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궁지에 몰린 인질범이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 유혈진압을 계기로 연방수사국과 지역 경찰에 협상요원을 배치했는데 이후 유사 사건의 95%를 인적 피해 없이 해결하게 됐다고 한다.

극 속 협상가들은 말한다. "사람은 금고나 자물쇠 같다. 열자면 복잡하고 짜증난다.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공을 들여야 한다. " 불행을 없앨 수 없다면 최소화해야 한다거나 광기란 중력과 같아 살짝 밀기만 해도 발동이 걸린다는 말도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천안함 사태와 관련,이명박 대통령과 한 · 미 공조 방안을 의논하던 중 '전략적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소식이다. 전략적 인내는 지난해 12월 북한을 방문했던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기자회견에서도 나왔던 문구다.

구체적인 뜻은 알기 힘들다. 전술이 아닌 전략이라고 한 걸로 봐서 상당기간 참아야 한다는 말인가 보다 짐작할 따름이다. 상대하기 힘든 적과 맞서려면 적의 동태를 면밀히 파악,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고 꼼짝없이 두 손 들 때까지 기다리는 게 필요하다.

대북관계에서만 그러하랴.사람과 사람,사람과 조직,조직과 조직 사이에도 전략적 인내로 대처해야 할 때가 있다. 분한 마음에 급하게 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는 까닭이다. 물론 전략적 인내가 지나쳐 매사에 눈치만 보다 보면 자칫 굴욕만 남을 가능성도 있지만.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