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환율 안정위해 다자간 통화스와프 필요"

"정부에 손벌려 구조조정 회피"
기업 '지대 의존적 형태' 비판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급격한 외국 자본 유출입에 따른 외환 · 금융시장의 불안을 막기 위해선 다자간 통화스와프의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은 총재가 공식적으로 다자간 통화스와프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다음 달 4~5일 부산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구체적 내용으로 이 방안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재는 31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한은 창립 60주년 국제컨퍼런스에 앞서 30일 배포한 개회사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최근 유럽 재정위기에서 신흥시장국은 외부 충격으로 심각한 환율 급변동에 시달려야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신흥시장국이 외부 요인에 따른 외환 · 금융시장의 불안을 차단하는 방안으로 △외환보유액 확충 △다자간 통화스와프 △거시건전성 규제 등 3가지가 거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총재는 외환보유액과 관련,"얼마나 쌓아야 충분한 수준인지 알 수 없으며 대규모로 확충하는 것은 상당한 비용이 수반된다"며 단점을 지적했다. 이에 비해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는 신흥시장국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김 총재는 그러나 "양자간 통화스와프는 임시 조치이며 상대 국가의 선택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이 흠"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중앙은행 양자간 통화스와프를 다자간 통화스와프로 전환하고 이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총재는 이와 함께 "글로벌 경기가 좋을 때는 신흥시장국에 외국 자본이 밀려들고 경기가 나쁠 때는 대거 이탈하는 경향이 있다"며 거시건전성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물가안정과 더불어 금융안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며 논의가 중단된 한은법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한편 김 총재는 지난 29일 미국 와튼스쿨이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주최한 '글로벌 동문 포럼' 기조연설에서 "금융위기는 금융회사의 레버리지(차입 투자) 확대 등 유동성 공급 과잉에서 비롯됐다"며 "중앙은행이 금융안정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유동성 조절 수단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와 관련,"증권업계의 머니마켓펀드(MMF) 등 제2금융권의 수신상품도 지급준비율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통화안정증권이나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 등 공개시장 조작 대상도 은행뿐 아니라 제2금융권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안으로 해석했다.

김 총재는 "미국 영국 등에서 거시건전성 정책 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한국도 이런 동향을 감안해 금융위기 대응능력 제고를 위해 거시건전성 정책체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총재는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지연됐다"며 "우리 경제가 위기에서 상당히 벗어난 만큼 시장 기능에 의한 상시적,자율적 구조조정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일부 기업들의 성향을 '지대 의존적 경영행태(rent-seeking behavior)'라 비판하면서 "기업의 진입 · 퇴출장벽을 낮추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출구전략에 대해선 "경제상황 차이 등을 감안할 때 (시행)시기는 국별로 다를 수 있다"며 "정보 공유로 대표되는 정책 공조의 기본정신은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