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흙장난

아이를 너무 깨끗하게 키우면 알레르기성 질환에 약해진다고 한다. 위생가설이다. 실제 선진국 어린이의 아토피성 피부염 유병률(20%)은 저개발국 어린이(2%)의 10배고,형제가 많아 방과 물건을 함께 쓰며 자란 아이들이 아토피나 천식에 덜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면역력은 어린 시절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노출되면서 자연스레 강화되는데 그렇지 못한 결과란 얘기다. A형 간염 증가의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어릴 때 맨땅에서 뒹굴고 흙장난을 하면서 면역력을 기르지 못한 사람이 A형 간염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흙장난은 면역력 강화뿐만 아니라 정서 안정에도 도움을 준다고 돼 있다. 2007년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팀이 흙 속에 서식하는 '마이코박테리엄 박카이(Mycobacterium vaccae)'를 쥐에게 주입했더니 뇌에서 행복감을 높여주는 세로토닌이 더 많이 만들어졌다는 게 그것이다.

흙의 또다른 힘인가. 이번엔 마이코박테리엄 박카이가 기분전환뿐만 아니라 학습능력 강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발표가 나왔다. 뉴욕 세이지대학 연구팀이 쥐에게 마이코박테리엄 박카이를 투입했더니 미로에서 훨씬 빨리 탈출하더란 것이다.

흙을 밟고 뛰노는 것뿐만 아니라 강과 바다,숲같은 자연 속 생활이 뇌의 성장을 돕는다고도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이 뇌의 각 영역을 자극,좌뇌와 우뇌가 고루 발달하도록 지원한다는 말이다. 바깥놀이가 고소득과 연결된다는 보고도 있다. 일본 국립청소년교육진흥기구에서 알아본 결과 어린 시절 밖에서 뛰논 사람일수록 학력과 연수입 모두 높았다는 것이다. 자연 속 단체놀이가 사교력과 의사결정력, 호기심과 탐구심을 제고시키기 때문인 것 같다는 분석이다.

요즘 도시 아이들은 흙장난은커녕 흙을 밟기조차 어렵다. 아파트 단지 안 어린이놀이터 바닥은 우레탄으로 바뀐 지 오래고,학교 운동장에도 인조잔디를 까는 탓이다. 모래바닥 놀이터나 흙바닥 운동장이 애완동물 분비물 등으로 오염되고 자칫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다.

그러나 흙과 달리 우레탄과 인조잔디엔 자정능력이 없다. 비위생적일 가능성이 더 큰 셈이다. 흙의 힘도 힘이고,더러워져 혼나 봐야 조심하고 넘어져 다쳐 봐야 위험한 줄 안다. 놀이터와 운동장의 흙을 없애는 건 아이들이 아닌 어른의 편의를 위한 일일지 모른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