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대만] (2) 경기 좋아졌지만 평균 임금 6%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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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연한 기업 경영 환경
"해고·이직은 자연스러운 것"
지난달 대만의 대졸 신입사원 평균 월급은 2만2724대만달러(약 84만원,대만상공회의소 자료)로 작년 같은 달 2만4334대만달러에 비해 6.61% 하락했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31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고,대만 경제부에 따르면 기업의 90%가 채용 광고를 낼 정도로 대만 경제가 가파른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임금은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대만의 유연한 기업 경영 환경이 주목받고 있다. 호경기에도 임금 상승압력이 낮고 노사분규가 '제로'에 가까울 만큼 노동 유연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업들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ODM(자체설계생산)→OBM(자체상표생산)으로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노사분규가 없는 나라
대만 대졸자의 평균 초봉은 2008년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지난해 금융위기의 여파로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다. 대만 경쟁력의 산실로 불리며 TSMC,AUO,UMC 등 대만을 대표하는 384개사가 밀집해 있는 신주과학단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리리융 신주과학단지 관리국 조장은 "업체마다 다르겠지만 인원의 30%가량을 해고한 곳도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대만 경제가 급속히 회복되면서 구직난은 해소됐지만 임금은 여전히 바닥 수준이다. 신빙룽 대만국립대 국가발전연구소 교수는 "비록 경기는 좋아졌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긴축 재정을 펼치며 적은 비용으로 인력을 고용하려 하고있다"며 "당분간 임금상승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이한 점은 구직자들이 이를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대만의 구직정보 사이트인 Yes 123이 최근 실시한 신입사원의 초봉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작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답했고,3분의 1은 작년 수준에 도달하기 힘들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민호 KOTRA 타이베이 무역센터장은 "대만 직장인들은 해고와 이직을 매우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며 "게다가 3000원 안팎이면 점심을 해결할 수 있고,주택대출금리가 연 3%대에 불과할 정도로 기본적인 생활물가가 낮아 100만원 이하의 봉급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상생과 협력
대만 경제의 유연성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대기업에서 분할된 중소기업이 모기업과 동등한 자격으로 대우받는다. UMC에서 분사한 미디어텍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1997년 설립돼 불과 10여년 만에 반도체 팹리스(fabless)분야 전 세계 4위,RFWS 무선 칩셋분야에선 퀄컴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주목할 만한 점은 UMC가 갖고 있는 미디어텍 지분이 1.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대만의 기업들은 서로 협력할 뿐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UMC는 미디어텍 외에도 다비드컴,파라데이,노바텍,홀텍 등 여러 기업을 분사시켰다. 위스트론 역시 세계 1위 노트북 제조업체인 에이서의 사내 부서로 출발,1991년 독립했다. 위스트론은 올해 대만 대기업 1000개 가운데 영업수익 6위를 기록했고,포브스 아시아에서 조사한 '세계 2000대 기업'에 올랐다.
'A-team'이라는 개념도 독특한 대만의 기업 문화를 보여준다. 우후이린 중화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A-team' 전략은 대만의 자전거 브랜드인 자이언트가 각 부품별 최고 기업들끼리 연합,대만이 전 세계 자전거시장을 휩쓸도록 만든 것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각 단계별 A클래스 업체가 힘을 합치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OEM에서 OBM으로 변신대만의 변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개념은 '브랜딩 타이완'이다. '만년 OEM 국가'라는 비아냥을 견디고,여기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수준의 자체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2000년 초까지도 대만 기업들은 '매뉴얼대로만 행동한다'는 비판을 받곤 했다. 주문자의 '오더'대로 상품을 만드는 대만의 산업구조를 비꼰 말이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만에 대만은 에이서,아수스 등 세계 100대 IT(정보기술)기업에 꼽히는 기업들을 배출했다. 특히 중국 내수 시장에서의 성장이 눈부시다. 중국 인스턴트 라면 시장을 평정한 '마스터 콩'이 주요 사례로 AC닐슨사 조사에서 이 회사는 지난해 중국 내 시장점유율 54.1%를 차지했다.
글로벌 대만 브랜드 육성 정책을 주관하는 TITRA의 청한스 전략마케팅 부처장은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만 글로벌 브랜드 가치평가'에 따르면 올해 상위 20대 대만 브랜드의 가치는 총 86억7400만달러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잭 통 HTC 부사장은 "세계 무대에서 ODM 업체로 성공해나가면서 대만 기업들은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며 "HTC의 브랜드 포지셔닝 목표인 'quietly brilliant(소리 없이 그러나 눈부시도록)'처럼 대만 기업들도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이베이=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