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뒤흔든 636억 팬택 CP 매입 사건 무죄"

고법 "팬택 회생가능성 검토, 매입 담당자 고의성 없어"
배임 인정한 1심 뒤집어
농협중앙회는 2006년 휴대폰 제조업체인 팬택의 단기 기업어음(CP) 636억여원어치를 매입해 단위농협 등 투자자에게 판매했다. 당시 팬택의 영업 상황은 나쁘지 않았으며,CP의 신용평가등급은 'A3-'였다. 그러나 그해 말 팬택 계열사의 경영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워크아웃을 신청하기에 이르렀고,CP를 구입한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떠안을 처지가 됐다.

단위농협 등 투자자들은 농협중앙회에 강력하게 항의했고,CP 상환을 요구하며 워크아웃 절차 동의를 거부했다. 당시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정모씨는 고심했다. 워크아웃이 지연되면 손해는 더 커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채권단이 한영회계법인 등에 실사를 의뢰한 결과 팬택 계열사를 계속 경영할 경우 가치가 청산가치의 두 배 이상이라는 판단도 나왔다. 결국 2007년 말 정씨 등은 팬택이 신규 발행하는 CP 509억원어치를 매입하고,대신 팬택은 그 돈으로 단위농협 등에 CP 80%를 상환하는 내용의 '팬택계열 CP에 대한 유동성 지원안'을 의결하고 집행했다. 그러나 뒤늦게 금융감독원은 농협 관계자들을 검찰에 수사통보했고,검찰은 작년 7월 신용평가등급 투자부적격 상태인 CP를 사들여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정씨 등 3명을 기소했다. 1심 재판부 역시 "신규 CP를 매입한 것은 팬택과 사전 합의하에 농협중앙회가 단위농협 등에 판매한 기존 CP의 원금을 보전해 주기 위한 것이 명백하다"며 "회수가능성이 불투명한 신규 CP를 기존 CP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매입한 것은 합리적인 경영 판단의 재량을 넘어선 배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이들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법률 위반(배임)죄로 징역 2년6월,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정씨 등은 불복했고 검찰 역시 항소했다. 지난달 2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부장판사 이성호)는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고등법원은 판결문에서 "정씨 등은 팬택의 회생 가능성,회사 파산에 따른 사회적 손실,김앤장 등의 법률 자문 결과 등을 충분히 검토했다"며 "이들은 또 과거 LG카드 등 유사사례를 참고해 경영상 판단을 한 것이며 배임의 고의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고등법원은 또 "배임으로 이득을 본 주체가 팬택인지 단위농협인지에 대해 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하지 않았음에도 공소 사실과 다른 사실을 인정한 위법이 있다"며 1심 판결의 위법을 지적했다.

고등법원 관계자는 "형식적으로만 보게 되면 워크아웃 기업에 자금지원을 하는 것은 모두 배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며 "그렇게 되면 금융회사들이 위축돼 사회적,정책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배임의 고의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팬택은 회생에 성공해 2007년 3분기 이후 지난해 말까지 매출 5조900억원,영업이익 4270억원(평균 영업이익률 8.4%)을 기록했다. 한편 검찰은 법원의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