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내 깡패같은 애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한 편 만드는데는 보통 1억~2억달러가 들어간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타이타닉'에 2억달러를 써 화제를 모으더니 '아바타'에는 3억100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전 세계 배급 홍보에 사용된 1억5000만달러를 합하면 총 4억6000만달러,우리 돈으로 무려 5620여억원이 투입됐다고 한다. 인류 최후의 순간을 다룬 재난영화 '2012'의 제작비도 2억6000만달러에 달했다.

한국영화 제작비는 그에 턱없이 못미친다. 대작이라고 해야 '놈놈놈' 170억원,'태풍' 150억원,'태극기 휘날리며'147억원,'해운대' 140억원,'괴물''한반도''전우치'각 110억~120억원 정도다. 평균제작비는 편당 30억원 안팎이다. 지난해에는 편당 23억원으로 낮아지더니 그 추세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제작비가 적다고 품질마저 떨어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10억원 안팎을 들여 만든 저예산 영화 중에도 볼 만한 작품이 적지않다. '워낭소리' 같은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 중에도 '영화는 영화다''집행자''반가운 살인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어마어마한 물량과 놀라운 비주얼로 승부하는 대작들과는 '범주'가 다르지만 돈줄 말라가는 한국영화계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상영 중인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저예산 상업영화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제작비 8억2000만원에 신인감독(김광식)의 데뷔작이니 흥행여건에선 최악이다. 소재 역시 3류 건달과 백수 처녀의 티격태격 로맨틱 코미디로 새로울 게 없고 군데군데 허술한 부분도 눈에 띄지만 '볼 만하다'는 평을 듣는다. 주연을 맡은 박중훈,정유미는 상황과 대사에 충실한 연기로 관객들을 웃기고,조마조마하게 하고,감동시킨다. 상영관이 적은데도 개봉 13일 만에 관객 50만명을 훌쩍 넘겼다. 감독이 정성껏 다듬은 스토리와 캐릭터를 배우들이 탄탄하게 살려낸 것이다.

물론 한국영화가 다 이런 방향으로 가야하는 건 아니다. 영화의 스펙트럼은 블록버스터에서부터 예술영화까지 아주 넓고,각기 나름대로 만들어져야 할 이유가 있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이 주목받는 까닭은 스토리와 연출과 연기라는 영화의 기본을 힘 닿는데까지 지켰기 때문이다. 적은 예산을 갖고도 한눈 팔지 않고 밀고나가다 보니 꽤 높은 효율이 나온 셈이라고 할까. 기본에 충실한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