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지자체 살림부터 바로잡아라

재정 자립도는 낮고 빚은 눈덩이
통합 촉진, 파산제 도입도 검토를
서울의 한 구청장은 기자에게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서울에 구청이 왜 이렇게 많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4~5곳만 있어도 업무엔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다. 낭비가 정말 이만저만이 아니다. "

지자체 재정 상황이 심각하다. 예산이 부족해 직원 월급조차 주기 힘든 지자체가 한두 곳이 아니란다. 인건비도 제대로 마련치 못한다면 서민 복지사업 등 다른 사업들도 차질을 빚을 것은 뻔한 이치다. 지방 재정이 위기에 직면한 것은 무엇보다 방만한 경영 때문이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도 일단 벌이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행태가 만연해 있다. 임기 중 가시적 성과물을 만들려는 지자체장들의 욕심 탓이다. 최근 수도권에서 수천억원이 투입된 호화 청사 건립이 줄을 잇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온갖 이름의 축제들,경쟁적으로 건립하는 각종 행사장들,꼭 필요치도 않은 공사판들 또한 돈먹는 하마다.

그러니 곳간 사정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지난해 말 현재 지자체 재정자립도는 전국 평균이 53.6%로 2000년 대비 5.8%포인트나 하락했다. 서울 등 광역시는 72.7%를 기록했지만 군 지역은 17.8%에 불과하다. 도의 경우도 대부분 20~30%대에 그친다. 부족분은 중앙정부의 교부세와 국고보조금으로 메우고 있다. 국민세금을 쓴다는 뜻이다.

지자체들이 무리한 사업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중앙정부의 지원으로도 모자라면 채권을 찍어낸다. 지난해 말 현재 전국 광역 · 기초 지자체들이 발행한 지방채는 25조원에 이른다. 1년 새 36%나 급증했다. 설마 중앙정부가 지자체를 파산시키기야 하겠느냐며 두둑한 배짱을 자랑한다. 모럴해저드의 전형이다. 게다가 많은 단체장들은 살림을 챙기기보다 이권 챙기기에 더 신경을 곤두세운다. 2006년 당선된 기초단체장 230명 가운데 비리나 위법 행위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이 무려 97명에 이른다. 압권은 위조여권과 고속도로 추격전으로 화제를 뿌린 민종기 당진 군수다. 관내 업체에 100억원대의 공사를 몰아주는가 하면 별장을 뇌물로 받고,아파트 분양대금을 대납시키는 등 그야말로 비리 백화점이었다. 조직 지도자들이 이 모양이라면 그 조직이 어떻게 굴러갈지는 눈감고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재정 파탄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국가부도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의 사례만 봐도 한 눈에 드러난다. 지자체 역시 곳간이 비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함은 마찬가지다. 미 캘리포니아주가 빚더미에 눌리면서 터미네이터 주지사(아널드 슈워제네거)도 별 수 없이 공무원들의 월급을 깎고 무급휴직을 시키는 등 악역을 감수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은 재정이 파탄 난 지자체를 실제 파산시키고 있다. 그로 인해 복지는 줄고 세금이 늘어나면서 정든 고향을 등지는 주민이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6 · 2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6명,기초단체장 228명이 새로 선발됐다. 보수와 진보,북풍과 노풍의 대결이라며 정치와 이념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지배한 선거였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들 앞에 놓인 최우선 과제는 바로 지자체의 살림을 챙기고 재정건전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불요불급한 씀씀이를 줄이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단체장 개인의 과시성 업적쌓기에 매달리기보다 진정으로 지역의 장기발전을 꾀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정부도 지나치게 세분화돼 있는 지자체들의 자율통합을 가속화할 방안을 마련하는 등 재정 재건을 위한 노력을 배가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 통합은 정부의 유인책에도 불구하고 통합창원 외에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지 않은가. 아울러 지자체별로 단계적 재정자립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정부지원금을 삭감하는 방안,파산제를 도입하는 방안 등도 적극 강구해야 한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