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인물열전] (4) 상앙(商央)‥급진적 개혁으로 이룬 절대권력, 오만과 독선에 무너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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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적 발상은 모든 구성원이 리더의 요구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단 한명의 반대파도 없어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카리스마형 리더는 자신의 심리적 쾌감을 위해 수많은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조직원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공포를 남기기도 한다. 상앙(商 )은 위(衛)나라 왕의 첩이 낳은 아들로,원래 성씨는 공손(公孫)이다. 젊은 시절 그는 위(魏)나라 재상 공숙좌(公叔座)를 잘 섬겨 대부의 집안일을 맡아보는 중서자(中庶子)란 자리에 오르게 된다. 공숙좌는 그의 인물됨을 알고 후임 자리로 점찍어 두었다.
어느 날 병에 걸린 공숙좌는 위문 온 위나라 혜왕(惠王)에게 자신을 대신해 나라의 큰일을 맡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혜왕이 귀담아 듣지 않자 만일 상앙을 등용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를 죽여 다른 나라로 가지 못하게 만들라는 섬뜩한 말을 남긴다. 그리고는 다시 상앙을 불러 똑같은 말을 전한다. 혜왕이 상앙을 등용하지 않으면 위험하니 멀리 떠나가라고.이 때 상앙은 자신을 등용하지 않았는데 어찌 제거하겠느냐며 유유히 자신의 자리에 있었다. 그러던 중 상앙은 널리 인재를 구한다는 진나라 효공(孝公)의 포고령을 보고 진나라에 가 어느 태감(太監)의 빈객으로 있으면서 효공을 네 번이나 만나게 된다. 두 번째 유세까지는 덕치를 얘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해 상대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세 번째를 거쳐 마지막 유세에서는 효공이 상앙과 무릎이 닿는 것도 모를 정도로 혼이 쏙 빠져 그가 제시하는 변법의 천하쟁패론을 경청하게 된다.
그가 추진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이런 것이다. 군주의 절대권력 확립을 전제로 하면서 귀족의 세습적 특권을 박탈하고,지식인들의 자유로운 사상논의를 엄격히 금하는 강압과 전제주의적 통치술이었다. 결국 이런 방대한 사업을 구체적으로 추진,수도를 함양으로 옮기게 된다. 행정구역을 현단위로 개편하고 농업을 중흥시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으며,개간사업을 진행하고 조세도 철저히 징수했다. 특히 군공(軍功)을 세우면 예우하되 사사로운 다툼은 법으로 금했고, 연좌제를 실시해 서로를 감시하게 했다.
법을 시행하던 첫 해부터 항의하러 온 자들이 1000여명이나 될 정도로 반대파들이 많았으니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효공의 부담도 컸다. 상앙은 이를 두고 효공에게 "의심스러워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의심스러워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진 자는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비판을 듣게 마련입니다"라며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여론보다 자기 확신과 결단력에 의지한 리더를 요구했던 상앙은 강력한 법치를 내세운 전제주의적 리더의 전형이자 급진적 개혁가의 모습이다. 상앙의 저돌적인 개혁의지가 없었다면 진나라는 대국의 통치기반을 갖추고 대외 영토 확장 계획을 쉽게 수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앙의 말은 틀림이 없으나 뜻대로만 굴러가지 않는 것이 세상이치다. 모든 일이 예외 없이 착착 진행되어 가던 상황은 효공이 죽으면서 평소 불만을 참아두었던 사방의 정적들이 그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형국으로 변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상앙은 위나라로 망명하기 위해 국경 근처 객사에 들렀다가 주인장이 요구한 신분증을 내놓지 못해 곧바로 신고되고 만다.
그는 결국 "아! 법을 만든 폐해가 결국 이 지경까지 이르렀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수레에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을 당해 죽게 된다. 이렇듯 상앙은 타인에 대한 지나친 엄격함 때문에 죽음이라는 부메랑을 맞은 비극적 인물이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자들의 말로가 비참한 것은 대부분 자신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착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wjkim@konyang.ac.kr
어느 날 병에 걸린 공숙좌는 위문 온 위나라 혜왕(惠王)에게 자신을 대신해 나라의 큰일을 맡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혜왕이 귀담아 듣지 않자 만일 상앙을 등용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를 죽여 다른 나라로 가지 못하게 만들라는 섬뜩한 말을 남긴다. 그리고는 다시 상앙을 불러 똑같은 말을 전한다. 혜왕이 상앙을 등용하지 않으면 위험하니 멀리 떠나가라고.이 때 상앙은 자신을 등용하지 않았는데 어찌 제거하겠느냐며 유유히 자신의 자리에 있었다. 그러던 중 상앙은 널리 인재를 구한다는 진나라 효공(孝公)의 포고령을 보고 진나라에 가 어느 태감(太監)의 빈객으로 있으면서 효공을 네 번이나 만나게 된다. 두 번째 유세까지는 덕치를 얘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해 상대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세 번째를 거쳐 마지막 유세에서는 효공이 상앙과 무릎이 닿는 것도 모를 정도로 혼이 쏙 빠져 그가 제시하는 변법의 천하쟁패론을 경청하게 된다.
그가 추진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이런 것이다. 군주의 절대권력 확립을 전제로 하면서 귀족의 세습적 특권을 박탈하고,지식인들의 자유로운 사상논의를 엄격히 금하는 강압과 전제주의적 통치술이었다. 결국 이런 방대한 사업을 구체적으로 추진,수도를 함양으로 옮기게 된다. 행정구역을 현단위로 개편하고 농업을 중흥시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으며,개간사업을 진행하고 조세도 철저히 징수했다. 특히 군공(軍功)을 세우면 예우하되 사사로운 다툼은 법으로 금했고, 연좌제를 실시해 서로를 감시하게 했다.
법을 시행하던 첫 해부터 항의하러 온 자들이 1000여명이나 될 정도로 반대파들이 많았으니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효공의 부담도 컸다. 상앙은 이를 두고 효공에게 "의심스러워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의심스러워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진 자는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비판을 듣게 마련입니다"라며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여론보다 자기 확신과 결단력에 의지한 리더를 요구했던 상앙은 강력한 법치를 내세운 전제주의적 리더의 전형이자 급진적 개혁가의 모습이다. 상앙의 저돌적인 개혁의지가 없었다면 진나라는 대국의 통치기반을 갖추고 대외 영토 확장 계획을 쉽게 수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앙의 말은 틀림이 없으나 뜻대로만 굴러가지 않는 것이 세상이치다. 모든 일이 예외 없이 착착 진행되어 가던 상황은 효공이 죽으면서 평소 불만을 참아두었던 사방의 정적들이 그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형국으로 변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상앙은 위나라로 망명하기 위해 국경 근처 객사에 들렀다가 주인장이 요구한 신분증을 내놓지 못해 곧바로 신고되고 만다.
그는 결국 "아! 법을 만든 폐해가 결국 이 지경까지 이르렀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수레에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을 당해 죽게 된다. 이렇듯 상앙은 타인에 대한 지나친 엄격함 때문에 죽음이라는 부메랑을 맞은 비극적 인물이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자들의 말로가 비참한 것은 대부분 자신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착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wjkim@ko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