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아차노조 앞의 독배(毒杯)

'전임자' 집착하면 노사 공멸
기업 경쟁력 확보에 손 잡길
장치산업의 특성은 가동률에 따라 수익이 크게 변동한다는 것이다. 가동률이 높아지면 수익이 늘고 가동률이 떨어지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전형적인 장치산업이 바로 자동차산업이다. 공장 하나에 수조원을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한국 대표 자동차기업인 현대 · 기아차가 해외무대에서 뛰어난 실적을 올리고 있다. 신모델과 소형차 라인업이 소비자 니즈와 맞아 떨어지면서 판매가 급신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현대차에 비해 경쟁력이 뒤처지는 것으로 평가받던 기아차는 세련된 디자인과 창의적 마케팅을 앞세워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모닝과 프라이드가 판매 선두권을 달리고 있고 고품격 디자인의 K7과 K5도 호평을 받고 있다. 10여년 전 외환위기 여파로 파산 지경에 몰렸던 기아차가 이 같은 부활 스토리를 써나가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기아차가 진정한 일류기업이 되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불안하기 짝이 없는 노사관계를 선진화시키는 일이다. 13년여를 끌어오던 노동관계법이 천신만고 끝에 지난해 말 통과돼 오는 7월부터는 한정된 숫자의 노조전임자 이외에는 더 이상 사용자가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 현재 공식적으로 136명의 노조전임자가 있는 기아차의 경우 18명만이 사용자의 급여 지급대상이 된다. 그런데 기아차 노조는 관련법을 무시하고 기존 노조전임자에 대해 임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은 시행 초기에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만일 초기부터 어긋나게 되면 법규정이 경시되고 파행적 관행이 또다시 자리 잡게 된다. 다행히 쌍용차는 노사가 개정된 노조법에 따라 노조 유급 전임자 수를 대폭 줄이기로 합의했다. 기아차 노조도 쌍용차 노조의 준법정신과 노사상생의 원칙을 눈여겨봐야 한다.

현재 기아차 노조를 보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실패가 떠오른다. 사실 1980년대 사경을 헤매던 GM은 1990년대 SUV와 픽업트럭의 신모델로 놀라운 실적을 올렸다. 최근 기아차의 화려한 컴백과 흡사할 만큼 극적이었다. 이때 GM이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하고 투자를 제대로 했다면 오늘날 같은 치욕스러운 파산은 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황금 같은 기회는 스테판 요키라는 강성 노조지도자가 등극하면서 물거품이 돼버렸다. 당시 GM 공장에선 비상식적인 노사협정으로 노동자가 4시간만 일하고 8시간의 급료를 받는 것이 관행처럼 돼있었다. 1998년 GM 경영진이 이를 고치려고 하자 스테판 요키는 파업을 결행했다. 노사협정에 따르면 안전과 관련된 문제가 없으면 파업은 할 수 없도록 돼있었다. 하지만 노조는 파업을 정당화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문제를 있는 것처럼 조작해 갑자기 고충처리를 40배로 늘렸다. 불법적으로 문제를 만들어 파업을 한 것이다. 결국 54일간의 파업 후 22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하자 경영진은 노조의 요구에 굴복하게 된다. 노조는 승리를 선언하고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노조가 생산성 이상의 대가를 어거지로 챙겨가는 기업이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결국 축배는 독배가 됐다. 경영자가 공장을 운영하지 못하고 노동자가 일 안하면서도 돈을 받는 GM은 서서히 회복불능의 진흙 속으로 빠져 들었다. 불법노조와 불합리한 관행,경영자를 무력화시키는 전투적 노조가 GM을 파산으로 이끈 것이다.

이제 기아차 노조는 GM의 몰락을 보면서 같은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현재 실적이 좋다고 노조가 최대한 받아내야 한다는 것은 단견이요 단기적 사고다. 장기적 관점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길은 기업의 경쟁력을 항구적으로 확보하는 것밖에 없다. 기아차 노조가 갖은 방편을 동원해 단기적 이익을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업이 냉엄한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유지수 국민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