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영업 뛰는 코오롱, 도요타 납품 길 뚫었다

안전벨트형 원사공급 계약 체결
김홍열 위원장, 日호시노 찾아가 "납기준수" 약속한게 결정적 도움

"고객을 찾는 일에 노(勞)와 사(使)가 따로 있을 수 있습니까. 빨간 머리띠를 풀고 다시 보니 회사 곳곳 노조가 할 일이 정말 많더군요. "

김홍열 코오롱인더스트리 노조위원장이 7일 오전 일본 니가타현 조에쓰(上越)시에 있는 자동차 안전벨트 원단 제조사인 호시노를 방문하기 위해 니가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 방문은 김 위원장이 납품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영업팀 직원들과 호시노를 처음 찾은 작년 3월 이후 꼭 1년3개월 만이다. 첫 번째 방문 때 그의 손에 들려있던 서류 가방에는 코오롱이 생산하는 안전벨트용 원사(原絲)의 품질 우수성을 알리고 노조의 공급납기 준수를 약속하는 서약서가 들어있었다. 이번 일본행 짐속에는 감사패가 실려 있었다. 1년 여간의 품질과 신뢰 검사를 거쳐 최근 코오롱의 원사를 공급받기로 최종 결정한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호시노는 지난달 말 코오롱과 안전벨트용 원사공급 계약을 맺고 이달 1일부터 코오롱에서 원사를 조달받고 있다. 호시노가 생산하는 안전벨트 원단은 도요타자동차에 공급된다. 코오롱은 연간 50t의 초기 공급물량을 내년 하반기에는 1000t까지 늘려나갈 방침이다.

세계 3위 안전벨트 원사 업체인 코오롱에 호시노는 반드시 공급계약을 성사시켜야 할 대형 거래처였다. 일본 자동차 시장 진출을 위해선 호시노와 같은 현지 중견 부품업체와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국내 섬유업체 중 처음으로 도요타자동차에 들어가는 안전벨트의 원사를 공급하는 데 성공한 배경에는 김 위원장의 현장 영업지원이 큰 힘이 됐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코오롱 관계자는 "일본 업체들은 까다로운 품질기준은 물론 전통적으로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거래처의 노사관계까지 계약기준으로 삼는다"며 "노조위원장이 호시노를 직접 방문해 납기 준수를 약속한 것이 계약 체결에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해외 현장영업 지원을 자임하고 나선 것은 작년 초였다. "지금 같은 불황에 노조가 손을 놓고 있으면 회사와 근로자 모두 도태된다"는 게 당시 그의 생각이었다. 호시노 이외에도 작년 10월 세계적인 타이어 업체인 일본 도요고무를 방문,코오롱의 타이어코드 주문량을 늘려달라고 부탁했다. 국내외 주요 거래처 약 130개 업체에도 '노조가 책임지고 제품 품질과 납기일을 준수하겠다'는 약속이 담긴 편지를 발송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지주회사인 ㈜코오롱은 2000년대 초만 해도 '강성노조'의 대명사였다. 2004년 회사 구조조정안에 반대해 두 달 넘게 파업을 했고 이에 따른 생산차질로 그해 1500억원의 적자를 냈다. 결국 인원감축을 결정했고 직원 5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홍역을 치른 뒤 노조도 생각을 바꿨다.

2006년 7월 조합원 90.8%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당선된 김 위원장은 "회사가 살아남아야 노조도 산다"며 조합원들을 설득했다. 코오롱 노조는 결국 같은 해 12월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이듬해 4월에는 '노사 상생동행 선언문'을 발표하며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 위원장은 "회사 경쟁력을 높이고 경영목표를 달성하는 게 근로자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길"이라며 "사업 수익을 늘리기 위해 노조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앞장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