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 中 철수 시작] (1) 한국의 80년대 후반 양상…외국기업 "더 못 버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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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곪아터진 중국식 비즈니스'세계의 공장' 중국이 파업 도미노에 빠져들고 있다. 중국 내 최대 제조업 기지인 광둥성에서 임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집중적으로 발생,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한국의 1980년대 후반을 보는 듯하다.
中정부도 임금 상승 적극 유도…폭스콘, 일주일새 10년치 인상
현지기업 생산기지 상실 우려
◆"최저 근로환경 · 생계 보장하라" 요구장쑤성 쿤산에서 경찰과 충돌한 대만계 회사 KOK인터내셔널의 한 근로자는 "작업장 온도가 섭씨 40~50도에 달하는데도 월급은 960위안에 불과하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폭스콘이 중국 공장 근로자 급여를 올리기 전 월평균 900위안과 큰 차이가 없는 저임금을 받고 있다는 것.
연쇄자살 사태로 열악한 노동환경이 부각된 대만계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업체 폭스콘은 일주일 새 세 차례에 걸쳐 임금 인상 계획을 발표,900위안이었던 월평균 임금을 10월1일부터 2000위안으로 높이기로 했다. 폭스콘 선전공장의 한 근로자는 중국 동방조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일주일 오른 임금이 지난 10년 새 오른 임금과 맞먹는다"며 그동안의 '임금 착취'에 분개했다. 혼다자동차도 최근 파업을 벌인 부품공장 근로자의 급여를 34% 인상했다. 폭스콘과 혼다 사태는 "파업을 하거나 노동문제가 불거지면 임금이 오른다"는 인식을 심어줬고,이것이 모방파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계 맞은 중국식 성장모델펑카이핑 칭화대 교수는 "폭스콘의 연쇄자살 사건은 근로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값싼 노동력에 기댄 과거의 발전방식으로는 중국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중요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궈위화 칭화대 교수를 비롯한 9명의 중국 학자들도 최근 폭스콘에 보낸 공개편지에서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는 기업문화 때문에 근로자들의 투신자살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세계의 공장' 중국의 미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폭스콘은 최근 외신들을 초청,올림픽경기장 수준의 수영장을 보여주며 복지시설까지 갖추고 있다고 강변해왔지만 한 근로자는 "30분만 주어지는 점심시간 중 오가는 시간을 빼면 10분 만에 식사를 해야 한다"며 "우리는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삼켜왔다"고 말했다. 폭스콘에서 일하는 허난성 출신의 한 근로자는 "감독관을 의식해 작업대에 앉으면 말을 하지 않는다"며 "3년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에 있는 중국노동자단체의 제오프레이 크로톨은 "회사가 보안에 집착한 탓에 공장이 마치 감옥과도 같다"고 지적했다. 저임금과 가혹한 근로환경이 폭스콘을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업체로 키운 밑거름이었지만 이젠 부메랑이 돼 회사의 위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의 고성장이 만들어낸 부(富)는 중국 젊은 근로자들의 박탈감을 키웠다. 폭스콘 근로자들은 화려한 쇼핑몰에서 자기 또래의 젊은이들이 BMW를 몰고 루이비통 핸드백을 사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소득격차를 보여주는 중국의 지니계수는 0.47로 한계점인 0.40을 훨씬 뛰어넘었다.
◆정부,임금인상 유도
중국에선 올 들어 10여개 성(省)과 시(市)가 이미 최저임금 표준을 10% 이상 올렸다. 이어 나머지 20개 지역도 연내 임금 인상에 나설 예정이다. 특히 지난 5월1일 노동절을 전후로 인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폭이 20%를 넘는 곳은 후베이성(28.5%),닝샤후이족자치구(24.9%),푸젠성(24.5%),지린성(21.2%),산둥성(21.2%),광둥성(21.1%) 등이다. 경기회복을 타고 지난해 동결시켰던 최저임금을 다시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임금 인상을 통해 빈부 격차 해소와 소비 진작을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