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그래첼 교수 "고층빌딩 유리창에서 전기 만드는 날 올 것"

고광철 논설위원 현장 인터뷰
헬싱키 밀레니엄 기술상 스위스 그래첼 교수
값싼 태양전지를 개발한 마이클 그래첼 스위스 에콜폴리테크니크 교수(66)가 기술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밀레니엄기술상'을 받았다. 핀란드 기술아카데미는 9일(현지시간) 에콜폴리테크니크(로잔) 포토닉스 앤드 인터페이스 연구소장인 그래첼 교수를 밀레니엄기술상의 제4회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래첼 교수는 수상 직후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태양광 에너지 산업에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태양광 에너지의 미래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염료 감응형 태양전지의 선구자로 불린다. 실리콘을 기반으로 한 1세대 벌크형과 2세대 박막형 태양전지가 갖고 있는 비싼 가격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값싼 유기 염료와 나노 기술을 이용해 제조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상당한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구현한 것이다. 유리에 활용했을 때 투명하고 다양한 색을 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염료 감응형 태양전지는 그의 이름을 따 '그래첼 셀'로도 불린다. 그래첼 셀은 2009년부터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이것을 활용한 첫 상용 제품은 지난 1월 나왔다. 태양전지를 붙인 작은 가방으로 모바일 제품을 충전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래첼 교수 팀은 빌딩에 주목하고 있다. 건물의 외벽이나 천장,채광창 등을 염료 감응형 태양전지 유리패널로 바꾸면 대규모 비즈니스가 창출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첼 교수는 "뉴욕의 모든 초고층 빌딩의 유리창이 전기를 생산하는 패널로 바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유리 제조업체인 필킹턴과 호주의 다이솔이 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합작회사를 세우기로 합의했다. 호주의 다이솔은 2008년 8월 한국의 티모테크놀로지와 합작으로 (주)다이솔 티모를 세웠고 이곳에서 염료감응형 태양전지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에서 태어난 그래첼 교수는 일찍부터 물리학과 화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피아니스트가 될까 고민할 정도로 음악도 좋아했다. 그는 "과학이나 예술은 재미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실험을 추구하는 것을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점에서 닮았다"며 "그래도 과학쪽이 안전한 베팅인 것 같아 연구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래첼 교수는 노벨 화학상 후보에 오를 만큼 학문적 업적도 뛰어나다. 800여편의 논문과 두 권의 저서는 물론 50여개의 특허를 갖고 있으며 논문이 가장 많이 인용되는 10대 화학자에 들어간다. 그는 "최근 많은 대학생이 금융 분야로 진출하는 게 세계적인 조류인 점이 아쉽다"며 "대학에서 과학과 기술이 인류의 삶을 발전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학생들에게 좀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금은 80만유로(약 12억원).그래첼 교수는 상금의 용도를 묻자 "연구를 하다 보면 많은 돈이 들어간다"며 "좋은 설비와 기자재를 사는 데 우선적으로 쓰겠다"고 말했다.

핀란드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수상자를 격려했다. 할로넨 대통령은 "세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역할이 크다"며 "기술의 도움으로 복지를 향상시키고 민주주의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후 변화에 맞서기 위해 환경친화적인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광철 논설위원 gwang@hankyung.com


◆밀레니엄기술상(Millennium Technology Prize)

밀레니엄기술상은 핀란드가 인간의 삶을 향상시킨 혁신적 기술에 2년에 한 번씩 주는 상으로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핀란드 정부와 재계가 공동으로 설립한 독립 재단인 핀란드 기술아카데미(Technology Academy Finland)가 수여하며 '기술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수출품의 5분의 1 이상이 첨단 기술 관련 제품일 정도로 기술 강국인 핀란드의 국가 발전 목표가 고스란히 담긴 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서 상을 주고 수상자를 위한 만찬도 대통령궁에서 열린다. 2004년부터 상을 주기 시작했다. 1회 수상자는 월드 와이드 웹(WWW) 창시자인 영국의 팀 버너스리,2회(2006년)는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한 일본의 나카무라 수지 교수,3회(2008년)는 제약 및 생체공학에서 혁신적인 업적을 거둔 미국의 로버트 랭어 교수가 받았다. 올해는 마이클 그래첼 스위스 에콜폴리테크니크 교수가 선정돼 상금 80만유로를 받았고 플라스틱 전자 분야의 선구자인 리처드 프렌드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ARM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한 스테판 퍼버 맨체스터대 교수도 최종 후보에 올라 각각 15만유로의 상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