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터뷰] 박종호 풍월당 대표 "오페라 보는 것처럼 정신과 진료도 '관찰'…전 타고난 구경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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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에 미친 정신과 의사풍월당(風月堂).서울 강남구 신사동 로데오거리에 있는 클래식 전문 음반매장.실내악 선율이 잔잔하게 흐르는 유럽의 살롱 같다. 그 옆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제목에서 이름을 따온 음악카페 '로젠 카발리에'(장미의 기사).그 곳에 그가 있었다. '오페라에 미친 정신과의사' 박종호 풍월당 대표(50).
그는 병원을 두 곳이나 운영하는 신경정신과 전문의이자 고전음악에 심취한 클래식 마니아다. 오페라단 감독까지 겸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 《불멸의 오페라》 등 클래식 교양서를 10여권이나 쓴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하다. 매주 이 곳의 풍월당 아카데미와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 강의까지 맡고 있으니 진료는 언제 하고,공연은 언제 보며,글은 언제 쓰는 것일까. "매장에는 자주 안 옵니다. 가끔 커피 마시고 음반 사러는 오지요. 진료는 1주일에 두 번 정도 예약 환자만 봅니다. 오페라 강의가 많아요. 혼자 글 쓰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
오페라 강의는 7년 전 풍월당을 만들기 전에도 해왔다. 그는 "오페라를 즐기다보면 문학 음악 미술 건축 의상 연극뿐만 아니라 서양인들의 생활 방식과 심리,역사까지 저절로 알게 돼 문화예술과 인문학 전반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고 얘기했다.
"강의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일단 클래식을 잘 모르는 분들입니다. 평생 일만 하다보니깐.이 분들이 조금 있으면 시간도 많아지고 뭔가를 해야 겠다 싶어서 오는데 특히 오페라에 관심이 많더군요. 오페라는 뭔가 어려워서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들 생각하나 봐요. "그는 올해 쇼팽과 슈만 탄생 200주년을 맞아 관련 강좌를 마련했지만 신청자가 적어 포기했다. 말러 150주년 기념 강좌도 사정은 비슷했다. "오페라는 줄거리가 있죠.그러나 베토벤 교향곡은 추상화 같은 것이어서 정말 배워야 하는 건데 거꾸로 생각들을 해요. 추상화는 알아야 하는 거고,구상화는 뻔한 건데 전형적인 구상 장르를 배우려 하고 추상화는 배우지 않으려 하죠.그래서 오페라 강좌는 늘 넘칩니다. "
그가 해외에서 본 오페라는 500편이 넘는다. 해외 여행 가서 하루에 두 번 본 적도 있을 정도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베를린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의 이색 피아노 협주였다.
"바렌보임이 자신의 조수를 베를린 필 지휘자로 데뷔시키는 무대였어요. 그날 조수를 위해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2번을 협연했습니다. 그는 지휘자 이전에 유명 피아니스트잖아요. 관객들도 사실은 조수 말고 바렌보임을 보러 온 거였죠.그날 연주 참 좋았습니다. 계속해서 앙코르가 쏟아졌어요. 결국 오케스트라가 들어가고 피아노만 남아서 바렌보임이 쇼팽 리사이틀을 했습니다. 연습을 안 한 것 같은데 일필휘지였어요. 거침없이 치는데 디테일보다는 큰 획으로 그어가며 대가답게….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순간을 위해 그는 늘 현지에서 공연을 관람하려고 노력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라는 책을 보면 하루키가 아일랜드에서 오크통에 담긴 술을 마시는 여행을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같은 것을 마셨더니 여행할 때 그 맛이 안 나더라는 거예요. 이탈리아 가서 이탈리아 와인을 마시고 독일에서 맥주를 마셔야 제 맛이죠.그 공기에서 먹어야 합니다. 공연도 그렇죠.유럽 공연에서 그걸 많이 느낍니다. "
그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지방에 있는 작은 연주회장에서 제대로 된 공연을 발견할 때 한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우리로 치면 시골에서 '강된장' 먹는 느낌이랄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남프랑스의 엑상 프로방스 지역.화가 세잔이 살았던 곳이라 미술문화가 발달하고 꽃도 예쁘고….나폴리도 다시 가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쇠락했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역사는 장중하기 때문이다. "부르봉 왕조가 있어서 위정자들이 럭셔리 문화를 잘 정립했고 프랑스 사람들답게 내부도 참 아름답게 장식했습니다. 음악도 좋고 극장도 좋고 낭만적이죠."
이 대목에서 그는 뜻밖에 야구 얘기를 꺼냈다. 오페라와 야구가 무척 닮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동차 안에 야구 유니폼을 갖고 다닐 정도로 야구광이다. 특히 프로야구 롯데의 광팬이다. "야구 경기 시간하고 오페라 공연 시간하고 비슷해요. 악보와 극본이 있어도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고 배우와 선수들의 컨디션도 그때그때 다르고,예상 못했던 홈런도 있고.일종의 퍼포먼스 같죠.또 있어요. 롯데는 경기 잘 못해도 좋아요. 잘 한다고 좋아하는 건 사랑이 아니죠.미국 시카고 컵스 경기도 보고 싶어요. 정말 더럽게 못하는데,아직도 우승을 못했죠.그래도 7회가 끝나면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노래를 부릅니다. '시카고 또 졌다네…. 우리는 그래도 너를 사랑해 시카고 컵스.'이렇게 마냥 좋은 것,그게 곧 예술이죠."요즘 같은 초여름 주말에 들으면 좋을 만한 음악은 뭘까. 그는 로시니의 현악 소나타와 슈만의 피아노 4중주,5중주를 꼽았다. 오후에 차를 마시면서 듣기에 딱이라는 것.연인과 함께 와인을 마실 때 들을 만한 곡으로는 오펜바흐의 '하늘 아래 두 영혼'을 추천했다.
그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예술을 창조했다"며 "앞으로도 예술의 향기 속에 파묻혀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구경꾼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신과의사라는 것이 구경꾼이죠.관찰자 입장입니다. 공연도 마찬가지죠.전 관객일 뿐이에요. 천성적으로 구경꾼을 좋아하는 건가 봐요,하하."
만난 사람=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