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마티즈 타는 2세 경영인

GM대우의 경차 마티즈가 인천공항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체격이 육중한 30대 중반 남성이 짐을 들고 내렸다. 우정훈 감로파인케미칼 이사(34)다. 2세 경영인인 그는 최근 '독일 히든챔피언(강소기업) 탐방'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독일로 가는 길이었다.

이날 우 이사를 포함해 10여명의 2세 경영인들이 인천공항에 차례로 나타났다. 또 다른 30대 후반의 남자는 기아차 카니발을 타고 등장했다. 한균식 경한 사장(37)이다. '우 이사보다 좋은 차 탄다'는 기자의 농담에 씩 웃으며 계기판을 보여줬다. 20만㎞가 넘는 주행거리가 찍혀 있었다. "한달에 1만㎞씩 탑니다. 하루에 1500㎞ 가까이 달린 적도 있죠.집과 회사가 있는 대구에서 아침을 먹고,광주에서 점심,서울에서 저녁을 먹는 식이죠."TV 드라마에서 보는 2세들과는 판이한 모습.기자의 생각을 읽었는지 한 2세 경영인이 말을 붙였다. "2세가 기업을 맡으면 외제차라도 한 대 뽑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론 있던 외제차도 팔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거래처나 주변에서 '젊은 녀석이 회사 맡더니 시작부터 싹수가 노랗다'는 얘기가 나오면 곤란하죠."

2세 경영인들과 회사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보니 또 다른 선입견이 깨져 나갔다. 공격적 행보,신사업 추진 등의 단어를 들어보려고 했건만 그들은 하나같이 회사 지키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무모한 짓 하다가 부모 세대가 수십년간 고생해 키운 회사를 말아먹었다'는 말이 나올까봐 무섭다는 말도 나왔다.

그들의 독일 일정표는 기업 탐방 등으로 빼곡히 찼다. 유럽 시장 확대를 위한 기회를 알아보고 합작 기회도 찾겠다는 생각에 질문 사항들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한 사장은 출장을 마치자마자 가지고 온 짐 그대로 중국으로 떠난다고 했다. "수출한 기계가 고장나는 바람에 고객사를 방문해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 이사도 귀국 다음 날 일본행 비행기에 오른다고 했다. 한 2세 경영인이 총총걸음으로 출국장을 빠져나가며 한마디 남겼다.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불평이야 못하죠.그래도 남들보다는 좋은 여건인데….어릴 때는 좀 더 폼나는 일을 해보려고 했는데 지금은 제조업이 재미있습니다. "

고경봉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