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교수의 경제학 멘토링] 도대체 화폐란 무엇인가

시장이 주도하는 사회적 분업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생업에만 종사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자는 모두 시장에서 구입한다. 그러므로 사회적 분업이 발달할수록 교환 범위는 확대되고 교환 물량의 규모도 더 커진다. 범위와 규모 양면에서 교환이 확대되면 교환을 매개하는 데 필요한 화폐의 수량도 함께 늘어난다.

만약 사회에 유통되는 화폐의 수량이 시장교환을 매개하는 데 필요한 수준에 미달하면 교환이 위축될 것이고 나아가 사회적 분업체제로 전개되는 생산이 차질을 빚을 것이다. 반대로 과다하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의 수량을 통화량이라고 한다. 화폐는 시장 주도의 사회적 분업을 이끄는 핵심 요소인데 모자라도 안 되고 너무 많아도 안 된다.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은 그때그때 필요한 교환을 매개하는 데 적절한 수량으로 관리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화폐가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지폐는 분명히 화폐이지만 한국은행권 말고도 교환을 매개하는 수단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신용카드와 기업들이 주로 쓰는 당좌수표는 매우 널리 사용되는 지불수단으로서 교환을 매개하는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백화점에서 발행한 상품권도 해당 점포에 제한되기는 하지만 교환을 매개한다는 측면에서는 돈과 다를 바 없다. 일반적으로 유동성만 높다면 어느 것이든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중에 유통 중인 '화폐'의 수량을 말할 때 한국은행권만을 화폐로 파악한다면 심각한 과소추계의 오류를 범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결국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는 유동성 수준을 발견하고 그 이상의 유동성을 누리는 것은 모두 화폐로 파악하는 것이 옳다.

경제학자들은 일차적으로 은행의 외부에서 유통되고 있는 한국은행권과 은행에 예치된 요구불예금 잔액을 합친 것으로 통화량을 추계해 본다. 이렇게 추계한 통화량을 통화(M1)라고 부른다. 유통 중인 한국은행권은 교환의 매개수단이며,요구불예금을 예치한 기업들은 그 잔액 이내에서 수표를 발행하여 대금을 지불하기 때문에 요구불예금의 잔액 역시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충분히 기능한다. 통화는 분명히 교환의 매개수단이다. 그런데 요구불예금이 아닌 저축성예금 잔액도 예금자가 계약만 해지하면 얼마든지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통화에 저축성예금의 잔액까지 포함한 것을 통화량으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추계한 통화량을 총통화(M2)라고 부른다. 통화와 총통화의 차이는 저축성예금의 유동성이다. 저축성예금의 유동성까지 과연 화폐 수준의 유동성으로 볼 것인가. 문제는 어느 누구도 저축성예금의 유동성이 화폐 수준의 유동성이라고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개인생활에서도 돈이 문제인데 경제학자들에게도 돈이 문제다. 도대체 화폐란 무엇인가.

서울대 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