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센서' 내시경…조직검사에다 초기위암 제거수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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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위암 발견율 50%, 5년생존율은 95% 웃돌아…개복수술과 대등한국만큼 위 · 식도 내시경 검사를 광범위하게 시행하는 나라는 드물다. 전 세계 내시경 검사장비 시장의 90% 이상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조차도 40세 이상이면 2년마다 한 번씩 하는 위 내시경 검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국내 위암검진 프로그램을 부러워할 정도다. 한국의 조기위암 발견율이 50%에 달하고 있는 것은 내시경 검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협대역영상·고해상 내시경 등 위·식도·대장 병변 손금보듯
내시경은 간단히 보여도 광학 전자공학 의학이 총집결한 첨단 제품이며 수술로봇 등 보다 차원 높은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밑바탕이 된다. 그 종류는 다양하다. 국내서 90%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일본 올림푸스의 협대역영상(NBI) 내시경은 단순 가시광선보다 짧은 파장의 파랑 · 초록 파장 대역의 빛을 쏘아 식도 · 위 · 대장에 생긴 조기 미세병변을 훨씬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다. 광원의 파장에 따라 조직에 침투하는 빛의 길이가 달라져 점막 표면 및 미세혈관의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고해상도 전자내시경(펜탁스사 EPK-I)은 세계 최초로 125만화소의 고화질을 구현했다. 기존 내시경의 두 배에 달하는 고해상도로 아이스캔(i-scan)기능을 갖춰 NBI,자가형광관찰장치(AFI) 등 특수영상장비를 별도로 결합시키지 않아도 유사한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다는 평가다. 다양한 색 변환을 통해 조직 또는 세포의 원래색과 가깝게 만듦으로써 병변을 잘 확인할 수 있다.
AFI는 콜라겐 엘라스틴 등의 조직에서 자연적으로 발산하는 형광을 포착해 정상조직과 종양조직 간 차이를 규명하는 검사다. 정상조직은 녹색의 형광을 내지만 종양조직은 상피세포가 정상조직보다 두꺼워 형광물질을 자극하는 빛을 차단하거나 흡수하기 때문에 보라색이나 핑크색을 띤다. 현재 시제품만 나와 있는 공초점 현미경 내시경(펜탁스)은 400~1000배 확대해 볼 수 있어 조직검사를 하지 않고도 바로 진단할 수 있다. 따라서 조직검사에 드는 시간을 줄이고 출혈 · 감염 등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내시경초음파는 내시경 끝에 초음파를 달아 내시경으로는 장기표면을 관찰하고 동시에 초음파로 장기내부를 파악하는 검사다. 위암의 병기(病期)를 판단하고 복부초음파나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진단하기 어려운 췌장과 담낭의 암,폐암의 림프절 전이 여부도 알아낼 수 있다. 검사비용은 일반내시경보다 5배 정도 비싸다. 병의 조기발견보다는 더욱 정확한 진단을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다. 내시경 검사 시 튜브를 삼켜야 하는 거북스러움 때문에 수면내시경 또는 경비내시경을 찾는 사람이 많다. 수면내시경은 미다졸람(수면제) 프로포폴(마취제) 등을 써 수면 상태에서 진행한다. 검사정확도에서 일반 내시경과 큰 차이는 없다. 다만 프로포폴을 사용할 경우 과잉 투여되거나 환자가 특이 체질이면 호흡곤란 상태에 빠질 수 있으므로 응급대응 시스템을 갖춘 병원에서 검사받아야 한다.
코를 통해 지름 5㎜의 가는 내시경을 위 속으로 넣어 관찰하는 경비내시경은 구역질 등 거부감이 적고 수면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장점이지만 관찰시야가 좁고 해상도가 떨어지며 코피가 날 수도 있다. 간단한 1차 스크리닝 차원에선 적합하되 본격 진단용으로는 미흡하다.
내시경으로 보면 암은 모양이 지저분하고 색깔이 하얗거나 지나치게 붉고 크기도 다양한 반면 양성종양은 모양이 일정한 양상을 보인다. 검사 결과 드물게 위 체부(가운데)의 후벽(등쪽)이나 십이지장 구부(위에 가까운 동그랗게 휘어진 부위)에 위치한 암을 놓칠 수 있다. 또 내시경으로 인한 출혈 또는 천공은 통상 1만명 중 3명꼴로 발생할 수 있다. 2년 이상 수련한 의사라면 오진이나 우발적 위험이 발생할 확률이 크게 낮아지며 임상경험에 비례해 편안하고 정확한 검사가 가능해진다. 40대 이상이면 2년에 한 번 정도 위내시경 검사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경제적 · 시간적 여유가 있고 가족력을 보이며 평소 건강관리 상태가 불량한 사람은 매년 받을 필요가 있다. 1년이면 위암이 3기까지 진행할 수 있는 점도 감안해봐야 한다.
조기 위암을 개복이나 복강경 수술 대신 내시경으로 제거하는 비중은 점차 늘고 있다. 1000건이상의 내시경 수술을 집도한 조주영 순천향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내시경 조기위암 제거술의 5년 생존율이 95%를 웃돌아 개복 및 복강경 수술후 성적과 비슷하다"며 "위 조직의 두 번째 아래층까지 파고 든 점막하종양도 내시경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기 위암은 보통 암 덩어리가 일정한 모양을 이루고,위의 4개 조직층 가운데 점막하층 아래로 파고 들지 않으며,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은 암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대장내시경에선 3~5㎜짜리 용종이 암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악성 · 양성 여부를 가리지 않고 즉석에서 제거하지만 위내시경 검사는 아직까지도 조직검사로 위암을 확진한 연후에 수술에 나선다. 내시경으로는 이 밖에 지혈,결손된 조직의 구멍막기,막힌 곳의 스텐트(인공튜브) 삽입,결석 제거,레이저를 이용한 문제 조직의 파괴(PDT치료) 등 다양한 시술을 할 수 있다. 조 교수의 경우 내시경을 이용해 대량출혈로 사망할 위험이 높은 식도정맥류와 위정맥류를 생체접착제로 지혈한 다음 인접한 조기 식도암 또는 위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세계 최초로 시행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