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자산운용사 CEO에게 듣는다②] 이원기 "한국 증시는 '스위트 스팟'"

"한국은 이미 선진국인데 증시만 유독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어요. 앞으로 그 격차를 메워갈 것이기 때문에 증시는 몇 년간 대세 상승기를 지속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올해 2월 KB자산운용 수장에서 자리를 옮긴 이원기 PCA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사장(51)은 뱅커스트러스트, 페레그린 등 외국계 운용사에서 정통 펀드매니저 코스를 밟은 한국 펀드매니저 1세대다. 2001년부터는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에서 리서치 헤드를 역임하기도 했다.그 후 3년만에 다시 자산운용업계에 돌아온 이 사장은 KB자산운용을 진두지휘하며 채권 중심이었던 KB자산운용을 주식형 펀드와 대체투자 분야의 강자로 육성했다.

그가 PCA투신운용 사장직에 오른지 4개월여간의 시간이 흘렀다. <한경닷컴>이 이 사장을 만나 그간의 성과와 앞으로 사업 구상에 대해 들어봤다.

◆ '정통 액티브 펀드'로 승부하겠다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PCA투신운용은 주식형 자산의 설정 규모가 2조원에 달한다. 국내 10위권 수준이다. 하지만 다른 상위 운용사들에 비해 최근 눈에 띄는 국내 주식형 펀드는 갖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 사장은 "PCA투신운용은 보험 계열사 덕분에 다른 외국계에 비해 국내 비즈니스 비중이 높지만 최근에는 두드러지게 관심을 끄는 펀드가 없었다"며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PCA의 명성을 회복하고, 로컬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키우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기 위해 그가 내세운 전략이 '프라이빗 에퀴티 어프로치(private equity approch)'이다. 소수 종목을 깊이 연구해 집중 투자하는 사모펀드처럼 펀드 운용에 접근하겠다는 의미다."국내 펀드투자자들의 요구가 굉장히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더 높은 수익률을 좇기 위해 랩어카운트나 사모펀드로 가기도 하고, 거래의 편의성을 위해 상장지수펀드(ETF)로 가기도 합니다. 이런 투자자들을 잡는 게 현재 자산운용업계의 과제죠."

랩어카운트 등에 마음을 빼앗긴 투자자들을 되찾기 위해 전통 액티브 주식형펀드로 승부하겠다는 것. 그 동안 국내 펀드시장에 '액티브 펀드'라고 하는 펀드들은 많았지만, 제대로 된 개념은 아니었다는 게 이 사장의 판단이다.

"진정한 액티브 펀드란 단지 종목 비중이 크다는 이유로 펀드에 편입하는 게 아닙니다. 인덱스 펀드에 비해 공격적이란 표현도 적절치 않습니다. 한 종목에 대해 몇 달이라도 깊이 있게 분석해 확신을 가진 종목만 비중에 관계없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게 제가 말하는 정통 액티브 펀드입니다"이 사장은 단지 코스피 지수 대비 2~3% 더 수익을 내는 게 목표가 아닌 진정으로 시장을 이기는 펀드를 만들기 위해 고심 중이라고 했다.

시장에서 말하는 액티브 펀드(active fund)는 주식시장 전체의 움직임을 웃도는 운용 성과를 목표로 하는 펀드로 코스피지수와 비슷한 수익률을 추구하는 인덱스 펀드보다 공격적이다.

그가 구상한 '정통 액티브 펀드'는 이미 대부분의 설계까지 완성됐다. 다만 코스피 지수가 1700선을 넘은 현 상황과 펀드 시장의 비수기라고 할 수 있는 여름임을 감안해 출시 일정을 조율중이다. 올해 9월께 출시하는 게 목표다.

◆ '대박' 찾는 펀드 때문에 투자자 신뢰 잃어

이 사장은 "자산운용업계는 먼저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펀드시장 팽창기에 흥행 위주에만 신경쓰다보니 투자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점이 크다"고 쓴소리를 했다.

과거 '대박' '히트' '인기' 등 자극적인 문구를 통해 단기 수익률을 앞세운 펀드들이 흥행 바람몰이를 했고, 이는 수준 높은 운용문화를 형성하는 데 장애물이 됐다는 설명이다.

"지난 1년간 독보적인 성과를 내며 수익률 1등을 한 펀드가 있다면, 이 펀드는 그 동안 대단히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했다는 뜻이나 다름 없습니다. 일시적인 단기 수익률에 중점을 두고 투자하면 십중팔구는 실패하게 됩니다."

그는 "시장에서 이런 펀드들만 집중 조명을 받게 되니 투자자들이 몰리게 되고, 결국은 조정장에서 펀드에 대한 배신감을 안고 펀드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작년에 1등한 펀드가 올해도 1등한다는 보장은 없다"며 "3년간 수익률 상위 30% 안에 꾸준히 오른 펀드가 훨씬 좋은 펀드"라고 강조했다.

◆ 한국 증시는 '스위트 스팟'

시장에서 그는 대표적인 강세론자로 통한다.

이 사장은 2000년 들어 증시가 회의론으로 팽배해 있을 때 코스피 1000 돌파를 자신하며 대세 상승기를 예상했다. 이 때 붙은 별명이 '천돌파'다.

그의 예측대로 코스피 지수는 2005년 이후 수년간 벗어나지 못했던 긴 박스권에서 벗어나 3년간 상승랠리를 펼친다.

이 사장은 코스피 지수의 대세 상승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전망했다. 그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는 외부 충격으로 잠시 멈췄다 가는 것일 뿐이지, 장기적인 '우상향' 기조는 훼손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구시대 모순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흐름이 21세기 초 들어 나타난 겁니다. 이 흐름이 그때부터 십여년간은 갈 거예요."

그는 "주식은 기업가치를 반영하는 숫자인데, 한국 기업들은 일단 수익성을 확보했다"며 "과거 구조조정 하고, 부실자산을 정리하면서 축적됐던 경쟁력이 이제 돈을 버는 과정에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올해 지수가 얼마가 될 것인가 맞추는 것은 의미도 없고 할 수도 없다"며 "다만 3~5년 후에 주가 수준은 현재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을 것이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외국계 투자사에서 일한 그는 외국인의 시각에서 한국 증시를 보는 데 익숙하다.

그가 강세론을 외치는 이유도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 증시가 매우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골프를 칠 때 공을 맞추는 최고 지점을 '스위트 스팟(sweet spot)'이라고 하죠? 외국인이 볼 때 한국 증시가 바로 스위트 스팟입니다. 전세계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돈은 너무 많고 그 돈들이 매력적인 곳부터 배분되는데, 우리나라 매력도는 상위에 있어요."

이 사장은 "외국인이 투자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재정 건정성과 환율"이라고 밝혔다.

"아무리 개별 기업이 좋아도 나라가 망하면 끝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볼 때 한국은 부채 비율이 낮아 매우 건전한 시장입니다."

또 그는 앞으로 절상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통화가 원화라며, 과거 1000원대를 밑돌던 원·달러 환율이 외부 충격으로 1200~1300대에 와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다시 1000원대로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국인이 환율만 가지고도 20%는 먹고 들어갈 수 있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차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1~2등을 다투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도 좋습니다. 이 뿐인가요? 유동성까지 좋아서 거래하기도 편합니다. 안 살 수가 없는 겁니다."

이 사장은 외국인의 동향을 고려할 때 앞으로 펀드나 주식에 투자할 때는 초우량 대형주 위주로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MSCI선진지수 편입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는 "한국이 이머징시장에서 빠지게 되면 시장의 크기가 줄어들기 때문에 MSCI에서 당장 올해 한국을 선진시장으로 편입할 거 같지는 않다"며 "다만 몇년 안에는 틀림없이 선진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으므로 그 경우 외국계 자금이 대형주에 집중돼 들어올 것"이라고 전망했다."언제 코스피 지수가 3000 가느냐, 하고 물어보면 신이 아닌 이상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 날씨가 더워질 것을 아는 것처럼 언젠가는 한국 증시가 지금보다 훨씬 높은 지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한경닷컴 김다운·정인지 기자 kd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