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Trend] Best Practice‥생산공정의 IT化…풋내기 20대에 수백억 플랜트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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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제강의 '젊은 피' 경영섭씨 45도가 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석유플랜트 공장.일본의 고베제강이 원유를 정제하는 공기압축기 설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현장의 책임자는 올해 입사 6년차인 마쓰야마 유키 사원이다. 고베제강은 수십억엔(수백억원)의 플랜트 설치 책임을 24세 젊은이에게 맡기고 있다. 연공서열과 현장의 오랜 숙련기술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으로선 신선한 반란이다.
고베제강의 기계사업 부문은 젊은 사원을 현장 관리자로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문 실적도 좋다. 기계사업 부문은 지난해 290억엔(약 377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243억엔의 적자를 낸 철강 부문과 비교된다. 매출 비중이 19%에 불과한 기계사업 부문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기계사업 부문 책임자인 시게카와 가즈오 부사장은 닛케이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피를 더욱 활용, 기계부문의 매출액도 앞으로 2년 안에 30%이상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부품 정보 PC에 담아 IT화
고베제강의 기계사업 부문은 고무나 수지를 혼합하는 산업기계와 석유정제 등에 사용되는 공기압축기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수출비율은 60%를 넘는다. 대형 공기압축기에서는 세계 1위다. 이들 제품의 대부분은 단품으로 주문을 받아 생산하는 방식으로,고객에 따라 설계가 모두 다르다. 이 때문에 제품 수는 5000여개 품목에 달한다. 복잡한 가공을 필요로 하는 대형 기계를 만드는 만큼 베테랑 사원의 숙련 기술이 절대적 요소였다.
그러나 이 회사는 복잡한 기계 가공도 젊은 사원에게 책임을 맡긴다. 세계 최대의 스크류압축기를 절삭하는 공정도 21세의 3년차 사원이 책임자다. 다른 기계회사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졌을까. 숨은 비결은 컴퓨터다. 지금까지 절삭가공의 공정 품질은 50~60대 베테랑 사원의 경험과 노하우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공정기술은 30년 이상 숙련된 사원들의 머릿속에 숨겨져 있었다. 젊은 사원들은 현장에서 어깨 너머로 선배들의 기술을 수십년에 걸쳐 익혀야 했다. 실제 1990년대 말까지 절삭공정은 설계도를 바탕으로 공작기계를 조작해서 가공했다. 설계도 자체에 복잡한 형태의 부품이 많아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선 베테랑 사원을 쓸 수밖에 없었다. 수주를 아무리 많이 따와도 생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소수의 인력에 의존한 생산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9년부터 컴퓨터에 부품을 3차원으로 표현하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됐다. 부품 형태를 데이터화해 개인용 컴퓨터(PC)에 저장할 수 있게 됐다. 경험이 적은 젊은 사원도 PC를 활용하면 설계도면대로 부품 가공이 가능해진 것이다. 정보기술(IT)화로 인해 작업시간도 40% 정도 단축됐다. IT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것이 PC에 친숙한 20대 젊은 사원이었다.
◆인력구조 탓도 있어고베제강이 20대를 적극 활용한 데는 숙련 인력이 부족했던 탓도 있다. 기계사업 부문은 인력구조상 10~20대 사원 비중이 31%로 가장 많다. 반면 현장의 관리직 역할을 해야 할 40대 비중은 10% 밖에 안된다.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직후 사원 채용을 확 줄였던 결과다. 현장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야 할 허리가 약해져 특단의 조치가 불가피했다. 그게 IT화였다.
고베제강은 산하의 '생산시스템 연구소'를 통해 공정관리 등의 기술을 표준화하고 IT화했다. 연구소는 각 공정을 검증해 효율적인 순서를 정하고,각 공정에 배치되는 사원의 숙련도를 5단계로 분류해 효율을 극대화했다. 공정관리를 베테랑 사원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은 2004년 구축됐다. 이에 따라 20~30대 사원도 컴퓨터만 만지면 공정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생산공정의 IT화와 '젊은 피'활용은 공장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2003년부터 7년간 공장 1㎡ 면적당 매출액은 50% 늘었다. 같은 기간 중 사원 수는 8%정도 증가에 그쳤다. 제한된 공간과 한정된 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표적인 게 공작기계의 유연한 배치다. 그동안 공작기계는 한 곳에 고정 설치돼 있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공정관리를 IT화하면서 공정 수요에 따라 이동이 가능한 중형 이하의 공작기계는 장소를 수시로 바꿔 배치했다. 그만큼 공장의 물리적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그 결과 고베제강의 기계사업 부문은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쇼크' 이후 수주가 꾸준히 늘면서 지난해 실적은 연중 3번이나 예상치를 상향 조정했다. 모건스탠리증권은 "고베제강의 기계사업 부문이 높은 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비용 절감폭이 당초 경영진의 계획보다 컸기 때문"이라며 "그건 현장에서의 생산성 개선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젊은 피 제대로 활용하려면
다만 이런 시스템은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단점이다. 제품의 진화에 맞게 공정 소프트웨어도 개선해야 한다. 고베제강은 그 개선 책임도 26세의 연구원에게 맡겼다. 이유는 명쾌하다. "고베제강 기계사업 부문의 생산공정 수는 5만개가 넘는다. 2000명에 달하는 사원들의 능력을 데이터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현장 직원들과 회의만 300시간 이상 해야 한다. 현장과 지속적으로 교감하면서 10년 후 20년 후의 생산관리시스템 변화에 대응하려면 젊은 사원이 시스템 개량을 책임질 수밖에 없다. "(오지마 노부유키 생산시스템연구소 실장)그렇다면 현장의 젊은 피는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시게카와 부사장은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하라"고 조언한다. "젊은 사원은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패 확률이 높다. 실패했다고 질책하면 쉽게 의욕을 잃고 다시 도전하지 않는다. 충분히 노력했지만 실패한 경우는 그 경험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실패 경험이 쌓여야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 젊은 사원에게 일을 맡기고,관리자나 경영자들이 너무 초조해 해선 안된다. "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