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꽃은 마음의 바다에서 끌어올린 인식의 두레박"
입력
수정
개인전여는 '꽃의화가' 안영나씨김춘수 시인(1922~2004년)은 '꽃의 시인' 또는 '인식의 시인'으로 불린다. 꽃을 대상이 아닌 존재론적 의미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우리 화단에도 꽃의 이미지를 존재론적인 미감으로 형상화하는 작가가 있다. 주인공은 한국 화가 안영나씨(50)다. 오는 30일부터 내달 5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갖는 그는 "변화무쌍한 동시대의 미의식을 보면서 자연 에너지와 생동감을 꽃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안씨는 '꽃인가,꽃이 아닌가'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 인간과 자연의 생명력을 묘사한 100호 이상 대작 20여점과 철망 설치 작품 10여점을 출품한다.
그는 평생 꽃 작업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꽃은 인간의 내면에서 퍼올린 '인식의 두레박'이자 자연을 상징하는 기호"라며 "우주 만물을 사유하고 성찰하는 데 좋은 소재"라고 설명했다.
"제 작업에서는 모든 것이 꽃으로 비치지요. 꽃은 현실과 이상이 어우러진 사물이고,화면은 소통과 인식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제가 쓰는 한국적인 화법 역시 서로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고요. "사물의 본질을 깨우는 수단으로 꽃의 이미지를 차용한다는 얘기다. 작품 역시 강하면서도 연약하고 텅빈 듯하면서도 꽉 채워져 있다.
안씨의 '꽃' 시리즈에서는 한국화에서 자주 보이는 '여백의 미'보다 격랑과 소용돌이로 충만한 '속도의 미학'이 엿보인다. 꽃의 색채는 어두운 편이지만 피어날 때의 속도감이 두드러진다. 한지의 독특한 질감과 청색 노란색의 은은한 느낌을 살린 작품들이다. 꽃의 율동도 선명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안씨는 최근 꽃의 형상에 글자를 함께 묘사한다. 한지를 여러 장 덧댄 후 글자를 의도적으로 엉성하게 붙여 우연처럼 드러나게 한 꽃 이미지에 다양한 형태의 '화'자를 슬쩍 비치게도 한다. 뒷면에 글자를 그려 화면의 앞면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배채법(背彩法)으로 구성의 깊이를 확보한다는 것이 안씨의 설명이다. 그는 "한지의 특성과 글자의 질감을 살려 존재의 근원을 작품 속에 녹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02)736-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