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 다시 보기] (7) 마녀사냥의 경제학‥불황때 '집단적 광기' 기승…임금 오르자 '잠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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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처형하는 과정에서 비용 소모…비즈니스 발생
경기 어려운 짐바브웨 등에선 지금도 누군가를 노려
유럽 곳곳에서 10만명에 가까운 무고한 사람들이 '마녀'라는 죄목으로 죽어갔다. 이들을 태운 생나무의 연기가 유럽 하늘을 검게 물들였던 때는 바야흐로 르네상스가 꽃을 피우고 근대문명이 출범한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였다.
그것은 하나의 집단적 광기였다. 절대주의를 옹호한 당대 최고의 정치이론가이며 가격혁명의 원인을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량 유입된 금은에서 찾았던 장 보댕 또한 그 광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580년 '마녀의 악마숭배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느리게 타오르는 불에 마녀를 굽고 요리하는 어떠한 처벌도 실로 나쁘지 않다. 그들을 위해 준비된 지옥의 영원한 고통에 비하면 그들이 죽을 때까지 지펴질 이 세상의 불은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마녀사냥은 왜 일어났을까? 마을에 어떤 재앙이나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 때 어느 한 사람을 마녀로 지목해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사회학적 해석도 있고,종교적 혼란기에 무너져가는 교회의 위계질서를 지키기 위해 대중 신앙을 엄격하게 처벌했다는 종교적 해석도 있다. 또 성비(性比) 불균형으로 인해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구애(求愛)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여성사적 해석도 있다. 17세기 독일을 주무대로 30년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독일의 남자 인구는 절반이나 줄었다. 이처럼 남자들의 숫자가 터무니없이 줄어든 지역에서 남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화장이나 육감적인 몸치장은 물론 주술의 힘을 빌리려는 여자들이 늘어났다.
이렇게 되자 구애를 자신들의 고유 영역이라고 알고 있던 남자들이 뒤바뀐 성적 역할에 당황하기 시작했고 악마에 영혼을 빼앗긴 채 끝없이 성적 욕망을 갈구하는 여자들이 끝내는 자신들까지 파멸시킬 것이라는 집단적 히스테리에 휩싸인 게 원인이라는 것이다. 마녀사냥 확산에는 경제적인 원인도 컸다. 우선 마녀사냥은 가해자들에게는 매우 좋은 비즈니스였다. 체포에서 처형에 이르는 절차가 이뤄지는 동안 소요되는 모든 비용이 마녀 혐의로 기소된 자의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밀고자에 대한 보상과 혐의자 체포,호송,구금,감시를 위해 비용이 발생했다.
마녀 판별을 위해 고문기술자들을 초빙했고 재판을 맡을 판사를 초청하는 데에도 돈이 들었다. 처형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지역에 따라 달랐지만 마녀를 처형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화형이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마녀 한 명을 화형하는 데 토탄(土炭) 16짐과 상당량의 나무와 석탄이 들어갔다. 만약 혐의자가 비용을 충당할 재력이 없으면 친척이나 후손들에게 빚이 전가되었다. 반대로 희생자에게 비용을 공제하고도 남은 재산이 있으면 그건 마을 공동의 재산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마녀로 지목돼 희생된 사람들 중에는 남편이나 아들이 없는 여성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경제적 요인의 하나는 불황과 마녀사냥이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2003년 튀빙겐대학의 외르크 바텐과 뮌헨대학의 울리히 보이텍이 발표한 논문은 소득충격이 마녀 처형 주기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계량경제학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영국 에식스 지방의 경우 실질임금이 1% 상승하면 마녀 처형 건수가 2% 하락했다. 또한 근대적 사회복지의 효시라고 불리는 튜더빈민법이 완성된 모습으로 시행에 들어간 1598년 이후 마녀 처형 건수는 현저하게 줄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소빙기(小氷期)의 기상이변으로 피해를 입었던 근대 초기 유럽의 농업경제가 마녀사냥의 한 원인이었음을 말해준다. 요즘 짐바브웨,탄자니아,남아프리카공화국,케냐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 마녀사냥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심각한 경제 불황 상태이거나 에이즈 등 질병이 확산될 때 더욱 빈발하고 있다. 근대 초기의 경우와 다른 것은 이곳에서의 마녀사냥이 불법이라는 점뿐이다. 마녀사냥의 원인이 무엇이었건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가 연극 '크루서블'을 통해 경고했듯이 그와 유사한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허구생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