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발표] "돈 된다" 너도나도 아파트 사업…구조조정 자초

전국 5만여채에 15조 묶여
PF부채, 매출액 6배 넘는 곳도
"4년 전만 해도 지으면 100% 분양됐습니다. 땅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고 시행사들이 땅을 사오면 무조건 지급보증을 해줬지요. 지금은 그게 부메랑이 돼서 돌아왔네요. "

25일 구조조정 대상으로 확정된 한 중견 건설사의 분양 담당 임원은 "분양 시장 침체로 아파트는 팔리지 않는데 시행사에 서줬던 지급보증까지 빚으로 변해 손을 써 볼 도리가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규모가 비슷한 다른 건설사도 이번에 간신히 C · D등급을 면했을 뿐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건설업계가 아파트 미분양 등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은 스스로 화를 부른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 많다. 건설사들은 집값이 오르기 시작한 2004년을 기점으로 너도 나도 주택 사업에 뛰어 들었다. 분양가 자율화에 따라 주변 아파트 시세만큼 분양가를 높여 공급해도 청약자들이 줄줄이 기다릴 때였다.

분양에 성공해 번 돈으로 비싼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썼다. 회사에 리스크 관리 조직은 아예 없었고,당장 돈 되는 아파트 사업을 강화하기 바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이미 지은 아파트에 무더기 입주가 시작되면서 '입주폭탄'으로 수급균형이 무너졌고 시중 자금경색으로 아파트 수요도 급격히 줄었다. 미분양 물량은 전국 곳곳에 쌓였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다 짓고도 입주가 되지 않은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2005년 12월 1만616채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2008년 12월엔 4만6476채로 4배 이상 급증했다. 이후 1년반이 흘렀지만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지난 4월 말 현재 4만9592채로 오히려 늘어났다.

미분양 아파트 한 채당 분양가를 3억원씩만 잡아도 15조원이라는 엄청난 자금이 된다. 이 금액이 아파트를 짓는 데 투자한 건설사에 몇 년째 들어오지 않고 있다. 건설사들은 지금도 각종 금융비용과 토지구입비 등을 계속 지급하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건설사들은 대부분이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역에서 소규모 아파트 사업을 하던 회사들은 아파트 '붐'이 일자 서울과 수도권 주요 지역에 진출해 사무실을 내고 아파트 분양에 올인한 경우도 있다. 이들 건설사는 경쟁적으로 아파트를 지을 땅을 확보하려다 보니 무리하게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나섰다. C · D 등급을 받은 건설사의 PF를 반영한 수정부채비율이 평균 660%를 넘는다. 심지어 국내를 벗어나 해외에서 아파트와 각종 개발사업을 벌인 회사도 있다.

일부 대형 건설사는 그룹 계열사 지원 등에 힘입어 이번 구조조정 리스트에서 빠졌다. 하지만 위험하기는 이전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많다. 작년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10위권인 S사와 D사의 경우 PF를 반영한 수정부채비율이 작년 말 기준각각 600%,400%를 넘고 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