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 국민연금 '복지사업 투자' 제동

카드 꺼낸 복지부, 반대하는 재정부
"국민연금의 신뢰도를 높이려면 가입자들이 연금 수급연령이 되기 전에 실질적으로 혜택을 느낄 수 있도록 복지사업을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복지사업은 세금으로 하는 일이다. 연금은 수익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획재정부)국민연금이 가입자들을 위해 각종 복지사업을 벌이는 문제(복지투자)를 놓고 복지부와 재정부가 한판 승부를 벌였다. 지난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금운용 실무평가위원회 회의에서였다. 이 싸움에선 재정부가 이겼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완책을 만들어 올해 하반기에 다시 실무평가위원회에 올린다는 계획이다. ◆복지투자 방안 부결

국민연금이 '복지투자'를 할 수 있는 근거는 '기금운용지침'에 있다. 매년 신규 여유자금의 1% 내에서 기금운용위원회가 가입자나 수급권자의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자금 대여나 복지시설 설치 등에 투자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복지부와 국민연금은 이 규정을 활용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간 4000억원가량의 예산을 들여 △실버타운 건설 △가입자 대여사업(대출사업) △주택연금 사업 등을 벌이는 내용의 복지투자 계획을 마련했다. 이스란 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장(실무평가위 간사)은 "장기적으로 가입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복지투자 방안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복지부가 제출한 복지투자 방안은 지난 25일 열린 기금운용 실무평가위원회 회의에서 부결됐다. '연금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돈인 만큼 안정적 운용을 바탕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고,수익을 희생해 복지사업을 할 이유가 없다'는 기획재정부의 반대 논리가 평가위원들에게 먹혀 들었기 때문이다.

김성진 재정부 사회정책과장은 "복지투자가 수익성을 저해할 수 있고 일반 회계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국민연금에서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7년간 4000억원이 큰 돈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복지부가 제안한 가입자 대상 대출사업은 기존 미소금융이나 희망홀씨대출과 사업 내용이 유사하고 주택연금도 시중은행과 주택금융공사 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전경련 등 사용자단체와 노총 등 근로자단체 관계자를 포함,이날 평가위원으로 참가한 상당수 인사들도 같은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평가위 부위원장인 오규택 중앙대 교수(한국음식업중앙회 추천)는 "연금이 저금리에 대출을 해 주거나 주택연금사업을 할 경우 수익성을 해치고,고금리로 운용할 경우 사업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딜레마가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 9월께 수정안 제출할듯

복지부는 실무평가위원회에서 복지투자 방안이 부결됐으나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유영학 복지부 차관은 9월께 열릴 다음 실무평가위원회에 복지투자안을 보완해 다시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일부 실무평가위원들도 "다른 곳에서 하는 사업과 중복되지 않는 아이템을 복지부가 제시할 경우 복지투자 방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복지투자가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연금 재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도 복지투자를 늘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한 실무평가위 관계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 · 야 의원들이 국민연금 가입자들에 대한 혜택을 늘리기 위해 복지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어 복지부가 이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