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30분 늦췄는데…아이 등교시켜 마음 편해요"

공무원 유연근무제 두달 해보니… 육아·아이교육 기대이상 효과
월급 40% 줄지만 시간제도 만족
"두 아이를 등교시키느라 아침마다 전쟁을 치렀죠.하지만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교문까지 걸어갑니다. 출근 시간이 1시간 늦춰져 가능한 일이죠."

동대문구청 교육진흥과에서 근무하는 강영호 주무관(45)은 연신 "생큐! 유연근무제"를 외쳤다. 유연근무제로 1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을 뿐인데 아이 등굣길이 확 달라졌다며 기뻐했다. 강 주무관은 지난달부터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탄력근무를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부터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 28개 기관 1425명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 중인 '2개월 유연근무제 시범실시'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유연근무제란 공무원이 근무시간과 장소,방식을 자유롭게 정하는 탄력근무제다. 집약근무제,재량근무제,재택 · 원격근무제 등 9가지 유형이 있다. 육아와 출산,아이교육을 위해 지원한 공무원들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봤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여성가족부 기획재정담당관실의 박문숙 사무관(41)도 30분 늦게 출근하는 탄력근무자다. 박 사무관은 "30분이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시간 맞춰 아이를 등교시키고 마음 편히 출근할 수 있는 요긴한 시간"이라고 전했다. 박 사무관은 또 "출근시간이 20~30분 늦춰지니까 새벽 학원수업을 온전히 들을 수 있어 좋다는 동료도 있다"고 덧붙였다. 유연근무제를 잘만 활용하면 업무효율과 노동생산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서 근무하는 임신영 기록연구사(29)는 집약근무제를 선택했다. 월 · 화 · 목 · 금요일은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7시까지 근무하고,수요일엔 집에서 학업과 육아에 주력한다. 그는 "업무 특성상 일반 민원인을 상대하는 일이 많지 않은 반면 집중력이 필요해 집약근무제를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주당 4일만 근무하지만 근무시간은 일반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40시간이어서 급여에는 변동이 없다. 강민성 주무관(여성가족부 성별영향평가팀)은 월 · 화요일 16시간만 일하는 시간제근무를 택했다. 그는 "아이를 갖기 위해 병원을 자주 가야 하기 때문에 주5일 근무와 병행할 수 없었다"며 "월급은 40%로 줄었지만 퇴직까지 고려한 만큼 시간제근무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주무관의 소식을 듣고 여가부의 다른 직원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강 주무관은 "다음 달부터 몸이 안 좋은 남자 사무관도 시간제근무를 시작한다"고 했다.

아예 집에서 근무하는 재택근무자도 있다. 동대문구청 공원녹지과의 이상욱 주무관(43)은 "여섯 살짜리 딸아이를 10개월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 12시간씩 기관에 맡겼더니 아이가 너무 힘들어 했다"며 "육아휴직을 고려하던 차에 시범운영 소식을 듣고 재택근무를 신청했다"고 반겼다.

이 주무관은 "전자결재 시스템이 잘 돼있고 매주 금요일 회사에 들러 협조가 필요한 업무를 처리하고 나머지 부분은 집에서 하고 있어 업무수행도 원활하다"며 "여성의 경력단절을 방지하고 육아문제로 둘째를 포기하는 주변의 맞벌이 동료들에게 좋은 해결책이 될 것 같다"고 권했다. 하지만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차별과 직접 대면을 선호하는 직장 문화 등은 해결해야 할 문제점으로 나타났다. 한 참여자는 "새로운 근무 형태로 동료들 얼굴을 못 보게 되면서 직장생활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행안부는 이번 시범실시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한 뒤 하반기부터 유연근무제를 본격 확대할 계획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시범실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설문평가를 한 후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유연근무제 시행방안'을 조만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진석/강황식/임현우 기자 iskra@hankyung.com